[신차 드라이브]알 사람은 알아? 재규어 신차 타보니…

재규어 `XJ 2.0P` `XF 3.0 V6 SC`

재규어도 결국 `다운사이징`에 동참했다. 플래그십 모델인 XJ와 스포츠세단 XF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2.0ℓ 직렬 4기통 터보엔진과 함께 3.0ℓ V형 6기통 슈퍼차저엔진 라인업을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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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재규어에 2.0ℓ 가솔린 엔진이라니….”

새로운 파워트레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2.0ℓ급 엔진은 주로 국산 중형차에서 줄곧 접해왔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근 출시된 차를 잘 살펴보면 수입차도 요샌 2.0ℓ가 대세다. BMW나 벤츠, 아우디, 폴크스바겐 같은 독일 브랜드는 물론이고 볼보나 포드도 주력 차종이 대부분 배기량 2000㏄ 미만이다. 물론 힘과 효율이 좋은 터보디젤차라는 점이 다운사이징을 자연스레 가능케 했다.

재규어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느껴왔던 재규어만의 퍼포먼스가 자꾸 떠올라서다. 가솔린 5.0ℓ 슈퍼차저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510마력의 무시무시한 힘을 생각하면 아직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런 재규어가 힘을 빼고 슬금슬금 다녀야 한다니, 분명 뭔가 어색할 것 같았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데이비드 맥킨타이어 대표조차도 차를 차보기 전까지 다운사이징에 의구심을 보였지만, 시승 뒤엔 꽤나 만족스러웠다는 소감을 전했었다. 물론 성능을 원한다면 3.0 슈퍼차저엔진을 고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이 회사는 최근, 전라남도 남해로 기자들을 불러 `파워트레인 변경 재규어 XJ와 XF`를 타보게 했다. 시승은 해안 와인딩로드와 고속도로를 아우르는 멋진 코스에서 진행됐고, 약 150㎞를 4시간쯤 탔다.

시승차는 배정된 조에 따라 달랐다. 먼저 탄 차는 7620만원짜리 재규어 XF 3.0 V6 SC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m에 달하는 성능을 내며, 8단 ZF제 최신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빠르고 부드럽게 힘을 전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도달엔 5.9초가 걸린다. 성능을 강조하기에 충분한 스펙이다.

시동을 걸고 중간 목적지로 향했다. 남해가 내려다보이는 느릿느릿한 산길이 재규어를 맞이한다. 아름다운 풍광이 이어졌지만, 그것도 잠시. 날렵한 XF는 연속된 코너를 사뿐히 헤쳐나갔다. 힘은 충분했다. 오르막도 거뜬하다. 어느 정도 차에 적응한 뒤엔 운전대 뒤에 붙은 패들시프트를 쓰며 보다 강력히 코스를 공략했다. 높은 엔진 회전수에서도 사운드가 거슬리지 않는다. 슈퍼차저 소리, 엔진 소리, 변속기 소리가 미세하게 나뉘어 들리지만 동승한 사람은 느끼지 못했다. 독특한 구조 덕분이다. 재규어는 `트윈보어텍스 슈퍼차저`를 V형 엔진 가운데 설치해 특유의 소음과 진동을 잡았다. 재규어만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도록 튜닝했다. 여기에 오토스타트-스톱 기능으로 차가 멈춰 섰을 때 연비를 높이고, 소음·진동을 줄였다.

5.0리터 엔진의 힘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겐 한층 다루기 쉬워진 차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고, 디젤엔진의 소음이 싫은 사람에겐 정숙함이 매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엔 재규어의 플래그십 XJ 중에서 2.0P 럭셔리 LWB를 탔다. 가장 궁금했던 2.0 가솔린 터보엔진이 탑재된 롱휠베이스 모델이다. 최고출력은 240마력, 최대토크는 34.7㎏·m다. 마찬가지로 최신형 8단 ZF제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엔진 성능만 놓고 보면 크게 부족하지 않지만, 5m 하고도 25㎝나 더 긴 차체를 자유자재로 끌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고속도로에 올라 성능을 체험해봤다.

예상대로 초반 가속력은 조금 답답했다. 3.0 슈퍼차저 엔진의 힘을 느낀 뒤라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이런 불만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변속기를 스포츠 모드에 놓고, 다이나믹 모드 버튼을 눌러 기능을 작동시켰다. 엔진과 섀시, 변속기가 모두 스포츠 주행에 적합하도록 변한다. 답답함이 많이 줄어든다. 시속 160㎞까지 꾸준히 가속된다. 끈기 있는 모습에 놀랐다. 180㎞를 넘어 200㎞ 이상도 달릴 수 있었지만 분명 고속에서의 가속엔 배기량이 답이다. 배기량이 적은 탓에 높은 엔진 회전수가 유지됐고, 똑똑한 8단 변속기가 엔진 힘을 촘촘하게 바퀴에 전달했다. 신나게 차를 타다 보니 핸들링 할 때 느낌이 꽤 좋다. 차 앞부분의 묵직함이 덜하다. 엔진 무게가 줄어든 탓에 핸들링이 한층 경쾌해진 것 같다. 작은 엔진으로도 나름의 운전하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차다. 차에 맞춰서 조금 부드럽게 운전을 해보니 여성이 몰아도 충분히 쉽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규어 코리아에 따르면 그동안 XJ는 3.0디젤이 주력 차종이었고, 이번에 2.0 가솔린 추가로 진입장벽을 낮췄다고 한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3.0 디젤 LWB보다 1800만원 저렴하지만 1억2190만원이다. 가장 저렴한 모델인 2.0P SWB가 1억1000만원에서 10만원 빠질 뿐이다. 많이 팔려고 들여왔다기보다는 이 차의 가치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공략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여수(전남)=박찬규 RPM9 기자 sta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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