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강국, 기술대국]창조경제 일자리 해법은 과학기술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10개 거점 국립대학 이공계 자퇴생 현황

새 정부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창조경제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나섰다. 세계 각국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우리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선택한 것이다. 50여년 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넘지 못하던 시절, 빈곤 탈출을 위해 산업화의 기치를 내걸었던 경제 성장 슬로건도 `과학입국, 기술입국`이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우리나라는 수출에 주력해야 했고, 이를 위해 앞선 기술과 숙련된 기능이 필요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과학시대를 예견하고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에 힘을 낸 이유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약하던 우수 두뇌를 모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고 전국에 기술학교를 세우는 등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이로 인해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최고 두뇌들이 이공계로 몰렸다.

우리나라가 세계가 놀란 경제 기적을 이끌어낸 것도 과학기술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 특히 국가 경쟁력이 앞선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는 생각 아래 우수 인재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인 결과다.

하지만 최근 현실은 이와 반대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김태원 의원(새누리당)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대 자퇴생 342명 중 234명(68.4%)이 이공계라고 밝혔다. 비중도 2009년 61.8%에서 작년 86%로 크게 증가했다. 이상민 의원(민주통합당)도 대학 총 자퇴생 중 이공계 비중이 2010년 64.3%에서 작년 67.8%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자퇴 이유는 졸업 후 취직이 어렵고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임금보장이 안되는데다 직업 안정성도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수 인재가 공대 대신 의대나 한의대, 약대로 몰리거나 심지어 공대생이 고시원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산업계에서 심각한 구조조정이 일어났고, 1차 감원 대상이 엔지니어였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국가와 회사 발전에 기여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구조조정에 의한 희생이었다. 15년 이상 이어져 온 풍토는 우리 경제 성장을 주도하고 지탱해 온 연구개발(R&D), 원천 기술의 제자리걸음, 혹은 더딘 진보로 나타났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이공계 대학원 유학생은 1만~1만2000명 수준을 유지했고, 학부 유학생은 1만2000여명에서 2만4000여명으로 두 배 늘었다. 좋은 연구 환경과 일자리를 찾아 우수 인재가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기술경쟁력 저하로 이어졌다. 지난 2011년 우리나라 기술 무역수지는 58억6800만달러 적자였다. 전년대비 수출액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도입액 더 증가하며 기술무역수지 적자폭이 커진 것이다. 2011년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부품 공급에 큰 차질을 빚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스마트폰 핵심부품 상당수를 일본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성장을 위한 기초체력이 과학기술이고, 과학기술 핵심이 이공계 인력인데 이런 선순환 고리가 깨진 것이다. 짧은 기간 우리 경제가 급성장한 배경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수 인재가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기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특히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우수 인재 이공계 유입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이공계 인재육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작년 12개 중앙행정기관의 이공계 인력사업 투자규모는 총 204개 사업에 3조9062억원을 투자했고 기업들도 우수인재 채용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다. 여전히 많은 부분의 투자가 대학(원)의 교육·연구여건 개선에 투자가 집중된 반면 구직자 및 선진연구자 지원 등 신규 일자리 창출분야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지난 정부 출범과 함께 약속했던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합쳐서 R&D의 50%를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졌지만 R&D 예산 증가에 비해 연구 인력은 많이 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규직 연구인력 숫자만 크게 늘었다. 교육이 산업현장의 변화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은 “산업화를 진행하던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생산현장에 더 필요한 인력이지만, 지금 필요한 인력은 고급 R&D인재”라고 강조했다.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교육현장에서 이런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상황은 다르다는 점도 지적한다. 절대적 인력부족도 문제지만 기업 규모에 따른 심각한 인력 미스매치도 풀어야 한다.

정부가 `괜찮은` 이공계 일자리 10만개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에는 단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기업의 이공계 인력 고용 확대와 창의적 창업지원 확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소의 정규직 연구인력 확대, 연구개발 서비스 등 과학기술 분야 새 일자리 창출 등 좀 더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새 정부의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이런 과제를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이 아닌 20~30년 후의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