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Catch the Uncatchable star in the sky)`.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17세기 초 발표한 소설 `돈키호테(원제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의 주인공 아론소 기하노는 미친 노인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노래하며 풍차에 돌진한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시대에 때로는 이 같은 무모함이 `혁신`을 이끈다.
정춘길 회장(67)은 지난 1979년 국립공업연구소에 재직하던 중 한림포스텍의 전신인 동진상사를 창업했다.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갑자기 배터리 솔루션 사업에 뛰어든 정 회장에 대한 주변의 우려와 만류는 컸다. 당시 일본이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국내 기술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정서였다. 엔지니어 출신인 정 회장이 기업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컸다.
“지인이 보여준 소형 배터리 한 개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작은 물체에서 큰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죠.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배터리 하나 때문에 인생이 바뀐 셈이죠.”
정 회장은 지난 1997년 독자 개발한 배터리팩 회로 모듈을 휴대폰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탑재, 고객사에 처음 공급하는 쾌거를 이룬다. 당시만 해도 배터리팩 시장은 일본 산요, 히타치, 도시바 등이 시장을 100% 장악하고 있었다. 국내 기술로는 배터리팩의 핵심인 셀(Cell)을 제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회로 모듈도 일본에 의존한 탓이다. 한림포스텍은 독자 기술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 LG전자, 노키아, 모토로라 등 국내외 대형 휴대폰 제조사를 고객사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지난 1998년에 500만 달러, 2000년에 2000만 달러 수출을 돌파했다. 2005년 국산 셀이 처음 배터리팩 시장에 등장하면서 한림포스텍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수년에 걸친 연구개발(R&D)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덕분이다. 정 회장은 “당시 일본 배터리 업체들이 앞 다퉈 솔루션 공급을 타진했다”며 “국내 대기업이 한림포스텍을 인수하겠다고 제의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무모함에서 시작된 혁신은 배터리팩 국산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난 2002년 무선전력전송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 집안에 널려진 수십 개의 충전기 케이블을 보다가 `무선으로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는 거셌다. 케이블 없이 전기를 전송한다는 `황당한` 발상에 회사 임원진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아연실색했다. 정 회장은 당시 무선전력전송 기술을 연구하던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대학과 벤처 기업을 직접 방문, 자료를 모았다. 수집한 자료를 기반으로 해외 협력사들과 솔루션 개발에 몰두했다. 결국 지난 2006년 일본 산요, 아스카와 함께 세계 처음 무선충전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2009년 여러 대의 전자기기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무선충전 ASIC 멀티 제어 기술도 선보였다. 배터리 업계의 `돈키호테`가 `콜럼버스`로 변신한 순간이다.
“무선충전 솔루션 개발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축적한 배터리팩 제조 기술의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죠. 일반적인 상식을 앞세워 안된다고만 하면 어떤 혁신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림포스텍은 지난 2009년 국제무선충전표준협회(WPC)에 가입, 이듬해 정규 회원사 자리를 꿰찼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WPC는 한림포스텍·LG전자·노키아·소니 등 120여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자기유도방식 무선충전기술 표준화 단체다. 정규 회원사는 20여개. 그중에서도 원천 기술을 보유한 업체는 한림포스텍을 비롯해 풀톤이노베이션, 파나소닉, 컨비니언트파워 등 4개사에 불과하다. 정 회장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무선충전 솔루션 시장이 개화하고 있다”며 “스마트패드, 자동차, 가구 등 다양한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림포스텍은 오는 3월 일반 소비자용 무선충전 솔루션 `SPACON`을 한국·일본 양국에서 동시 출시한다. 풀톤이노베이션 등 원천 기술을 보유한 해외 경쟁사들이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 확보에만 열중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일반 소비자 시장 진출에 앞서 일본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시장 조사를 진행했다. 잠재 소비자층이 두텁고, 경쟁사가 적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이다.
정 회장은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신입 사원 채용 면접을 직접 챙길만큼 인재 확보에 열성적이다. 가장 큰 점수를 부여하는 항목은 지원자의 직업관과 인생관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선구자`를 키우겠다는 의지다. 정기 간담회, 개인 면담을 통해 나이차가 무려 40세에 이르는 신입 사원의 의견도 적극 수렴한다. 그는 한림포스텍이 보유한 가장 큰 자산으로 `사람`을 꼽았다.
“미래를 꿈꾸는 직원들과 함께 글로벌 무선충전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꿈이 지금의 한림포스텍을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21세기 돈키호테가 될 것입니다”
정춘길 한림포스텍 회장 약력
- 1972년~1988년 국립공업 연구소 재직
- 1973년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 1979년 한림포스텍 대표 취임
- 2000년 수원지방검찰청 자문위원
- 2005년 중국 남경 한림태과전자법인 대표 취임
- 2010년 행정안전부 신성장 동력 경영 대상 대통령상 수상
- 2010년 스파콘 대표 취임
- 2013년 대한민국 글로벌 리더 선정(매일경제)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