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매출액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기업 파카하니핀은 최근 우리나라에 부쩍 애정을 쏟는다. 한국 시장 비중은 전체 매출의 5%도 채 안된다. 이 회사는 몇 년 전까지 아시아 시장 확보를 위해 중국 제조·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중국 사업을 위해 합작사를 설립했다가 인력도 기술도 빼앗긴 뒤 중국 진출 계획을 대폭 수정하고 한국에 생산 시설을 추가 설립키로 했다.
한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옮기거나 한국 제조 시설을 확장하는 기업도 늘었다. 바커케미컬, 바스프 등 글로벌 화학·소재기업은 한국 생산량을 늘린다. 다우코닝 역시 충북 진천에서 발광다이오드(LED)와 태양광 소재를 개발한다. 한국에 거점을 두고 전 세계에 관련 제품을 공급한다. 언급한 회사 모두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제조 시설이 있지만 한국 법인의 위상이 유독 강화됐다. 반도체·LCD 장비 회사들이 한국에 대규모 양산 시설을 들여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납기를 정확하게 맞추는 등 일처리가 빠르다, 학력 수준이 높고 합리적이라 의사소통하기 쉽다. 기술 유출 우려가 없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자동차·조선·중공업 4대 업종에 세계 1·2위를 다투는 세트 제조 기업이 있다는 점도 크다.
중국이 성장하면서 임금이 올라가고 중국 내 제조시설 유지비 부담이 커져 굳이 기술 유출 부담을 안고 중국에 갈 이유가 없다는 점도 있다. 기업 친화적인 환경도 한국의 강점이다. 문화적으로 융화되기 어려운 일본보다 한국에 거점을 두는 게 편하기도 할테다.
지난 몇 년간 국내 산업계의 화두는 중국이었다. 가장 큰 시장이자 가장 큰 위협으로 인식됐다. 세계의 공장을 당해낼 수 없어 한국 제조업은 죽었다, 금융·소프트웨어 등 서비스업으로 체질 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왔다.
그동안 한국 제조업은 고급화하면서 발전을 이뤄왔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대량 생산하는 산업이라면 몰라도 첨단 기술 제조에 있어 경쟁력이 있다. 가장 큰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인도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도 있다.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이 인정한 아시아 전초기지다. 다시 제조업을 생각할 때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