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282>글씨는 글의 씨앗이다

글을 읽으면 글을 쓴 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글에는 그 사람의 생각은 물론이고 글 재료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좋은 글은 읽다 보면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 나도 같이 여행을 하는 듯 느껴진다. 글을 쓴 사람의 고뇌의 흔적과 고심했던 얼룩이 군데군데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아 그렇구나!` 하는 무언의 감탄사 속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동감과 공감이 글을 읽으면서 이어진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이 느끼는 그리움을 긁어서 생긴 삶의 얼룩이자 무늬다. 곧 글은 그리움이 긁혀서 생긴 흔적이자 무늬다. `문장에 파란이 없으면 여인에게 곡선이 없는 것과 같다`는 임어당의 말이나 `말에 무늬가 없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은, 다 글과 말에는 그 사람이 사무치게 갈구하는 그리움의 숨결이 반영돼 있다는 의미다.

글을 읽는 것은 글 쓴 사람이 보여주는 사투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나도 거기에 빠져 읽는 것이다. 작가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생각이 떠올랐거나 하찮은 사물에 대해서 아련한 옛 추억이나 애틋한 사연이 떠올랐을 때 뭔가 남기고 싶어서 글을 쓴다. 갑자기 연상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몇 자 적어 보다 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무심코 글을 쓰기도 한다.

익숙한 현상을 낯설게 바라본 느낌을 남기고 싶을 때나 낯선 대상이 나에게 익숙하게 다가올 때 글을 쓴다. 지나가는 생각의 꼬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을 때 글을 쓴다. 그렇게 쓰다 보면 글발이 생긴다. 글에 발이 생기면 자꾸 어디론가 걸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글을 쓰라고 그분이 찾아온다.

나지막하게 말하고 싶은 그분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글쓰기는 결국 작가의 글이라기보다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어준 그분의 목소리다. 여기서 그분은 글의 재료인 사물일 수도 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다만 그 분이 말하고 싶은 느낌이나 생각을 받아 적을 뿐이다. 나는 그래서 그분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할 뿐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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