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복잡해졌다. 산업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어디서나 `복잡성(Complexity)`이 증가했다. 갈수록 더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전기공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자동차를 어느 정도 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강아지 사료 하나를 살 때도 20여 가지 성분을 따져봐야 할 정도다. 기업경영자(CEO)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확실한 경제 환경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마트·융합·그린·소셜 등 매일 터져 나오는 새로운 키워드가 CEO들을 괴롭힌다. 기업 경영과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이 흔들리는 지금 같은 상황은 정말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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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연구에 `복잡계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원자처럼 작은 단위 물질과 현상들이 모여 어떻게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를 연구하는 방법론이다. 복잡계 과학의 대가인 존 L 캐스티 박사는 사회 복잡성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기존 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시나리오를 `X이벤트(X-events)`로 정의했다. 인간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력, 식수, 식량, 커뮤니케이션, 교통기관, 의료, 방위, 금융 등이 너무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한 시스템이 재채기를 하면 다른 시스템들은 곧바로 폐렴에 걸릴 수 있다는 가설이다. X이벤트 후보로는 인터넷 오류에 따른 디지털 암흑, 식량 부족으로 인한 세계적 재난, 유럽연합 붕괴, 핵폭발, 석유 고갈 등 11가지를 꼽았다.
현대 사회가 `카드로 지은 집`처럼 복잡하고 상호 의존적으로 변해갈수록 X이벤트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다고 세계 경제 질서 붕괴나 인류 종말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복잡함 속에 `단순함(Simplicity)`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상을 불러오는 동인(動因)과 공통분모만 찾아내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다양한 채널과 장르의 데이터를 연관 분석해 공통점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 `빅 데이터(Big Data)`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구글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보다 열흘 정도나 앞서 전 세계 독감 유행 상황을 짚어낼 수 있었던 것도 빅 데이터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주민들이 발열이나 기침 같은 감기의 징후들을 검색하는 빈도를 바탕으로 독감 확산을 포착했다.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우울하다` `열 받는다`는 댓글이 늘어나면, 몇 개월 뒤 실업률이 증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빅 데이터는 기업 CEO나 창업가의 고민도 해결해준다. 일본 에너지 전문업체 오사카가스는 최근 `비즈니스 분석센터`라는 부서를 만들었다. 수학 및 통계,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과학자가 모인 집단이다. 이들은 사내에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일상 업무에서 경영 효율 향상까지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창업 지원에도 빅데이터가 활용된다. 업종·지역·연령별 상권 데이터와 대출, 임차료, 권리금 등의 자료를 통합, 분석해 상권 정보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빅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포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속내와 욕망을 파악하고 숨겨진 흐름이나 추세를 잡아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정치·사회·문화 등 우리 삶 모든 영역에 숨어 있는 복잡성의 정체를 밝히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그 누구도 복잡한 미래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복잡한 현상이 오히려 더 간단한 문제일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이 탄생한 것도 `복잡성을 불러오는 단순함` 때문이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