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앞선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을 이끌고 대·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하는 균형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이다. 성장에 치중했던 구시대 가치를 넘어 국민 행복을 실현하고 창의성에 기반해 새로운 성장을 열어가는 변화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과학기술을 국가 정책의 중심에 놓았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 구현`이 새 정부의 국정 과제가 된 것은 필연이다.
가파르게 성장하던 우리 경제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수년 전부터 좀체 성장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인당 소득 4만달러를 꿈꿨지만 2만달러대에서 멈춰서 있다. 일부는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 늪에 빠지면서 2만달러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여러 해법이 제시되지만 성장과 분배, 국민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은 과학기술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이 과학기술 발전에 국력을 집중하는 이유다. 전자신문은 새 시대에 맞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국가 위상을 높이고 국부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세계는 지금 `과학기술 총력전`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중 과학기술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 과학기술 수준이 이미 양적으로 한국을 뛰어넘었다고 분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은 2010년 우리가 3.74%로 중국(1.77%)의 두 배에 달했다. 중국 연구자 1인당 특허출원 건수는 32건으로 한국(64건)의 절반에 머물렀다. R&D 투자액 대비 첨단기술 산업 수출액은 중국이 500%로 한국(372%)보다 1.3배 많았다. 중국 R&D 투자규모(1043억달러)도 2010년 현재 한국(380억달러)의 3배나 됐다.
특허출원 건수는 39만건으로 한국(17만건)의 2배, 국제학술논문(SCI)급 논문은 14만편으로 한국(4만편)의 4배에 달한다. 총 연구자 수는 121만명으로 한국(26만명)의 5배다. 연구원이 양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계량 평가한 결과, 상대 지표로는 중국(55)이 한국(110)의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절대규모는 중국(409)이 한국(151)을 크게 앞섰다. 핵심기술 분야 등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빠르게 높아져 우리를 크게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은 금융위기 등 경제 불안에도 과학기술분야 투자에 국가의 미래를 걸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추경 예산 중 30억달러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면서 “우리의 번영과 안보, 건강, 환경,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과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공화당과 연방적자 감축안 협상이 한창이던 작년 말에도 “미국이 연구와 기술, 에너지 분야에서 확실히 세계를 이끌어가길 원한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3 회계연도 예산도 기초과학 연구 진흥 및 창의적 인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 R&D 예산은 우리나라(16조9000억원)의 8.8배인 1408억달러(약 151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45%인 640억달러가 순수 기초·응용 연구 분야에 투입된다. 많은 인재를 육성해 과기분야 연구 인력·수준을 높이는 한편 일자리와 신성장 동력을 창출해 경제위기 극복 물론 세계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겠다는 전략 하에 초·중·고교 단계에서 수학·과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매년 30억달러 가량을 투입하고 있다.
◇흔들리는 과학기술 입국
우리는 지난 5년 간 정부는 68조원을 투자, 연평균 R&D 증가율이 세계 2위(9.6%)를 달성했다. 중국(22.3%)을 제외하고 일본(8.8%), 미국(7.9%), 독일(1.8%), 프랑스(-2.1%) 등 주요 선진국을 앞섰다.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 한국형 원전 수출, 기동헬기 개발, 천리안 위성개발, 쇄빙연구선 건조, 나로호 발사 등 중점기술에 대한 투자도 이어졌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출범시켜 연구개발 시스템 효율화를 도모하고 과학기술 인재육성과 과학기술 집적단지 조성 등 R&D 기반 확충에도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민간 R&D 투자는 원래 목표했던 5%에 크게 못 미쳤고 연구 성과는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논문 피인용도는 2007년 31위에서 2010년 30위, 기술무역수지 비율은 2007년 0.43%에서 2009년 0.42%로 제자리걸음 했다.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오히려 같은 기간 29억달러에서 49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중소기업의 자체 R&D투자 증가율은 2007년 24.4%에서 2010년 4.8%로 줄었고 중소기업의 고급 연구인력 부족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수 인재의 해외유출 및 이공계 이탈 심화로 고급 과학기술 인력 부족현상은 더 심각해졌다.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1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외 두뇌유출은 58개국 중 17위를 기록했다. 2006년부터 2010년 간 과학올림피아드 수장자의 48%만 이공계대학(의과대학 제외)에 진학했다. 기업의 R&D 지출 중 대학·출연연 위탁 비중도 2007년 2.7%에서 2010년 2.1%로 감소했다. 성과주의 예산제도(PBS) 하의 국가출연연구소는 중장기 대형 연구과제 수행 부족과 연구자의 자율성 및 창의성 발휘를 가로막고 있다.
◇과학 강국, 기술 대국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 실현을 기치로 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됐다. 과학기술계 뿐 아니라 위기극복과 변화를 갈망하는 국가 전체적인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지난 현실은 이런 기대와 반대로 갔다는 게 과학기술계 등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공계 학생은 자신의 전공보다는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고, 정부나 정치계 주요 인사 가운데 이공계 출신도 많지 않다. R&D 투자는 늘어났지만, 연구 환경과 연구원 처우는 점점 후퇴했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민간의 자발적인 R&D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의 신산업 R&D에 대한 선제적 투자, 금융·세제 지원, 기술창업 지원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 환경변화, 국내 기술수준 등을 분석해 유망기술 분야를 발굴하고 집중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 정부 R&D 기획과 예산배분, 평가, 성과활용 등을 아우르는 전주기 관리체계도 조기에 확립해 국가 R&D의 투자효율성도 높여야 한다. 중소기업이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사업 확대와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기술 혁신 중소기업의 R&D 인력에 대한 지원도 시급하다.
우수 과학기술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하는 이공계 르네상스와 녹색, 융·복합 등 경제·사회적 수요에 대응하는 맞춤형 인재양성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산·학·연 간 활발한 인력교류와 공동연구를 위한 제조개선과 지원, 세계 일류 연구기관 육성을 위한 출연연의 구조개편과 연구 자율성 제고를 위한 연구자 중심의 R&D 제도 도입도 시급하다.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서 능력을 최대한 발현되도록 하고, 관리 중심에서 연구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개편해야 한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이디어, 혁신, 창의성 등에 기반한 과학기술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세상을 바꾸는 과학기술은 국가미래의 희망이자 창조경제의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