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8> 빼기 디자인

디자인 실용주의는 장식이 아니라 기능성을 품은 아름다움이다. 예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는 디자인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기능과 비례해 버튼이 많아지는 산업 시대적 발상으로는 디지털 시대 소비자 마음을 잡을 수 없다. 현대 디자이너의 숙제는 더욱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기능은 전보다 낫게 만드는 것이다.

애플의 수석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도 아이팟, 아이폰 등을 만들면서 디터 람스의 디자인 제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직관적으로 디자인된 버튼, 복잡한 장식을 감추고 제품 본연의 기능이 제일 먼저 눈에 띄도록 만든 표면 등 애플 제품과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브라운 제품의 특징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PDA나 넷북을 생각해보자. 키보드나 마우스가 없는 PC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사무실에서는 PC로 쓰던 것을 스마트패드만 들고 나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아이폰이 도화선이 된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능한 모든 것을 터치로, 그것도 한 손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필요한 버튼은 모두 하나로 수렴했다. 사용자는 어떤 버튼을 누를지 고민이 되면 동그란 버튼만 누르면 된다. 기계가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끼게 하고 사람이 기계를 사랑하게 만드는 요소가 이런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디자이너가 그 역할을 했다. 물론 기술의 힘을 얻어서다.

발명에는 `더하기(+)` 기법을 쓰는 것처럼 디자인은 `빼기(-)` 기법을 쓴다. 두 개의 기능을 더해 하나의 유용한 상품을 만든 것이 지우개 달린 연필이다. 반대로 날개 없는 선풍기처럼 빼기 기법으로 안전성이 보완되고 미적으로도 우수한 상품이 태어나기도 한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 원하는 기술자와 더 쉽게 사용하고 싶은 소비자 사이에 디자이너의 `빼기` 역할이 있다.

훌륭한 디자인은 장식이 절제된 솔직한 디자인이다. 잘못된 장식적 디자인은 불필요한 생산단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온 지나친 장식적 디자인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일반적 기업에서 디자인은 `장식적인 디테일을 추가하는 일`이라는 착각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디자인 투자를 두려워 하기도 한다. 장식적 디자인으로 생산 비용이 상승한다는 얕은 인식에 사로잡혀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망설인다.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들이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어느 곳에 놓아도 그 형태와 색이 잘 어울린다. 반면에 장식적 요소가 많은 디자인은 단일 제품으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와 어울리는 공간에 놓지 않으면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여자처럼 보기 불편하다. 미니멀리즘은 흔히 모더니즘과 혼용돼 쓰여서 현대적 디자인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된다. 오히려 지금보다 물질이 풍부하지 못했던 과거에 우리 선조들은 최소 자원의 최소 활용으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따라서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시대에 미니멀리즘은 탁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더 이상을 뺄 것이 없다` 싶은 디자인에도 혁신은 가능하다. 바로 기술 발전 덕분으로 디자인 산업은 혁신을 거듭해왔다.

대형 마트의 PB(Private Brand) 제품은 `디자인 실용주의`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였다. 값싼 이미지에서 벗어나 프리미엄(Premium Private Brand) 가치의 추구하면서 가격경쟁력을 유지해야 했다. 기능을 강화한 디자인 실용주의를 택했다. 실용적 디자인은 아주 작은 부분의 배려에서 시작된다. 생활 용품 디자인의 핵심은 `실사용자가 되어보는 것`에 있다. 여기서 생겨난 디자인이야말로 사용자를 진심으로 감동시킨다.

이노디자인의 홈플러스 PB제품(homeplus milk+cruet&storage)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10`에서 수상작으로 뽑혔다. 우유병을 닮은 깔끔한 디자인으로 주방에 비치했을 때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제품 윗부분에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살짝 굴곡을 만들었다. 이는 요리 도중 기름이나 물이 묻은 손으로 잡아도 쉽게 뚜껑을 열 수 있도록 한 디자인 실용주의를 정확히 드러내준다. 또 제품 안쪽은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를 해 밀폐력과 위생 면에서 우수하고, 제품 아랫부분만 투명하게 해 내용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기능을 위해 다른 소재를 더하지 않았다. 이미 있는 것에 미세한 돌출부를 추가하는 간단한 작업으로 단가 상승을 억제했다. 최소한의 형태로 기존 양념통의 불편을 해소했다. 칫솔모가 서로 맞닿아 비위생적인 칫솔꽂이는 입구에 작은 돌출부로 공간을 나눠 서로 닿지 않도록 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였던 `플러스(+)`도 형상화됐다. 저렴한 가격에 조화로운 인테리어 요소를 갖춘 실용적 생활용품으로 완성됐다.

일찍이 디자인의 거장 디터 람스는 `적게 그러나 낫게(Less is more)`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21세기의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염려하는 세계인에게 더욱 강렬한 메시지다. 기능이 진실 되고, 가격이 착하고, 모양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디자인의 `진선미`가 히트상품을 만들기 위한 3대 요소라는 깨달음을 기업인들도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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