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델이 30년 전 창업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회사의 운명을 건 승부수를 띄웠다.
5일(현지시각) 로이터·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 3위 PC 기업 델이 244억달러(약 26조원)에 창업자인 마이클 델과 사모펀드인 실버레이크에 매각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20억달러(약 2조1700억원)를 투자했다. 이날 이사회 승인은 거쳤으며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뤄진 IT 분야 차입매수거래(LBO) 중 최대 규모의 빅딜이 마무리된다.
이번 거래로 델은 비상장사로 전환한다. 델 주식을 갖고 있던 기존 주주들은 주당 13.65달러를 받는다. 마이클 델은 과반수 지분 확보를 위해 소유하고 있던 37억달러 규모의 주식(15.7%)과 7억달러(약 7625억원)를 투자한다. 델의 CEO직은 유지될 전망이다. 실버레이크는 10억달러(약 1조원)가량 투자했다.
마이클 델은 1984년 대학 기숙사 방에서 단돈 1000달러로 창업해 굴지의 PC 기업으로 키워냈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델은 PC 산업 부침과 함께 2006년부터 쇠락세를 걸었다. 모바일 시대로 급변하는 과정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비즈니스 모델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한다. 마이클 델은 “이번 매각은 델과 고객들에게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것”이라며 부활을 다짐했다. 혁신에 속도를 내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블룸버그는 “델의 매각은 PC 시대의 쇠락과 모바일 시대의 도래를 상징한다”며 전략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IBM이 PC 사업을 매각한 이후 80%의 매출을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에서 얻고 있는 것과 비교했다. 지난해 4분기 델의 PC 판매는 전년 동기대비 13% 줄었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PC 출하량은 4% 감소했다. 올해도 1.5% 준다. 반면에 스마트패드 판매는 지난해 72% 올랐으며 올해도 54%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델이 주문형 조립을 비롯한 저가 제조 혁신과 구매자 직송 등에서 앞서갔지만 제품의 혁신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원스톱 숍` 전략도 뼈아프다. 수 십억달러를 들여 보안소프트웨어·스토리지 등 기업을 사들였지만 주력인 PC 사업이 고꾸라졌다. WSJ는 “신규 사업들이 PC 사업 침체를 상쇄하지 못했고 원스톱 숍은 기술과 조직이 융합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델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클 델이 HP의 PC사업 매각설을 비난했던 만큼 PC 사업 자체를 접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MS와 손잡고 새로운 회생 방안을 마련하는데 집중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기업용 시장에서 MS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클라우드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반면에 서피스 등 이미 상당한 하드웨어(HW) 제품군을 가진 MS가 델의 회생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PC 시대의 옛 영광은 좀처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다수였다.
[표] 델 연혁
1984년 마이클 델 기숙사에서 `델컴퓨터` 창업
1985년 최초로 자체 설계 컴퓨터 시스템 `터보` 출시
1988년 주당 8.5달러로 기업공개(IPO) 실시하고 나스닥 상장
1991년 자사 최초 노트북PC 출시하고 시장 진입
1992년 포천 500대 기업 선정
1993년 세계 PC업체 톱5 선정
1995년 한국지사 설립
2001년 세계 PC 시장 점유율 1위 등극
2006년 HP에 시장 점유율 1위 빼앗김
2013년 1월 마이클 델 창업주와 사모펀드에 매각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