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로 못을 박는다. 그런데 가끔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이 있다. 벽에 못을 망치는 유용한 도구지만 가슴에 못을 박는 망치는 망치는 도구다. 내 손에 망치를 갖고 있으면 세상은 부셔버릴 사물이나 못을 들고 어딘가에 박을 대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내 손에 삽을 갖고 있으면 세상은 전부 삽질의 대상으로 보인다. 내 손에 어떤 도구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어느 정도 결정한다.
망치는 파괴의 도구이자 또한 창조의 연장이다. 망치로 부셔버린 바로 그 지점에서 또 다른 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망치는 망치는 도구가 아니다. 망치는 기존의 생각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창조적 파괴의 도구이자 연장이다. 망치는 못을 박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낡은 생각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새로운 생각이 싹틀 수 있게 만드는 사유의 연장이다. 기존 생각을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새로운 생각의 씨앗이 자랄 수 있다. 도구는 인간의 신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신체의 연장이자 생각의 연장이다.
똑같은 망치를 가지고도 누구는 가슴에 못을 박아 상처를 주는 도구로 사용하지만 누군가는 낡은 생각을 부셔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꿈틀거리게 하는 창조의 도구로 사용한다. 도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와 의도가 문제다. 도구로 만드는 창작은 언제나 미완성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미켈란젤로가 어린 시절부터 죽기 일보직전까지 망치를 들고 작품을 조각했던 이유도 이전 작품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자든 예술가든 모두 이전 작품보다 조금 나아지려고 애쓰는 가운데 보다 나은 작품을 창작하려는 순수한 욕구가 꿈틀거리는 사람들이다. `장인`이라는 책을 리처드 세넷에 따르면 장인은 그 어떤 보상과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자기 일에서 스스로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도구는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이미 한 몸이다. 한 몸이 된 도구는 자신의 정신이요 신체다. 그 도구의 쓰임으로 탄생하는 작품은 그래서 곧 장인의 정신이요 철학의 반영인 셈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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