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반도체 업체가 대학·연구소에 공동 투자해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국책 과제가 우리나라에서 올해 처음 시행된다. 대형 반도체 기업이 상용화를 위해 직접 연구개발(R&D)을 추진하거나 수요 기업으로 참여했던 관행에서 더 나아가 선행 기술 개발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21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글로벌 장비 업체 등 반도체 대기업은 오는 2월 발표할 산업원천기술융합 R&D 과제에 14억원을 출자, 차세대 반도체 소자·공정 공동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사업비 절반을 부담하고 다른 업체가 나머지를 댄다.
반도체 선진국인 미국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앞으로 서서히 지원금을 늘린다. 내년에는 사업비가 20억원으로 늘어난다. 주요 연구 분야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한국이 뒤처진 로직(Logic) 공정 기술 개발이다.
이 사업은 미국 반도체 업계가 공동 출자해 매년 1000억원씩 학계에 투자하는 `SRC(Semiconductor Research Corporation)` 사업을 본땄다. SRC에 가장 많은 출자금을 내는 인텔은 SRC를 통해 대학·연구소에 R&D 자금을 지원하거나 개별적으로 선행 기술을 개발한다. R&D가 어느정도 무르익으면 상용화 가능성을 검토해 이 중 한 개 기술을 채택한 뒤 지원을 중단하고 내재화하는 방법을 써왔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했다.
메모리 반도체에 강점이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회로 선폭 미세화 속도에서 인텔을 위협할 수준이지만 로직공정 외주생산(파운드리)은 특정 회사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일부 품목에 한정해 개발해 왔다. 시장 상황이 급변할 때 역동성이 떨어지고 복잡한 로직 공정 개발 능력도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자 기술을 개발하는 인텔·TSMC와 달리 IBM·글로벌파운드리스 등과 공동 전선을 구축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자·공정 선행 기술 개발이 필수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주요 기업들과 논의중”이라며 “이같은 R&D 방식은 한국 반도체 업계에서는 처음 도입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