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디자인스토리]<1> `태극기가 디자인 아이콘이 되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왜 `태극`인가?

12년 전 나는 문득 우리나라 태극기로부터 아름다운 선들을 발견했다. 태극에서 발견되는 우아한 곡선과 사괘에서 보이는 과감한 직선들을 보면서 나는 멋진 한국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곡선의 유연한 모습과 직선의 강직한 모습이 만난다면 가장 멋진 한국인의 모습이 보일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한국인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때, 나는 태극기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곡선과 직선들로 여러 가지 상품 디자인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12년 12월 27일 나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진입하는 `박물관 나들길` 입구인 서울 이촌 지하철역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따뜻한 축복을 받으며 약 2년 만의 공사를 마치고 그날 오픈하는 나들길의 디자이너로서 감회를 전하는 인사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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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나들길`의 내부공간 조성은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이 디자인 총괄을 맡아 한쪽 벽에는 태극기의 태극을, 다른 벽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을 추상화했다. 지하보도의 천장과 바닥은 태극기의 사괘를 표현해 박물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디자인은 표현입니다. 이번 `박물관 나들길` 디자인을 통해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한국 사랑이었습니다.”

작품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던 것도 지난 30년간 했던 어떤 프로젝트와 다른 특별한 경험이었다.

◇거대한 캔버스에 `모던 코리아`의 그림을 그리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방식과는 달리 혁신적 디자인에 제약이 많은 공간을 마주했다. 나는 역발상으로 순수 예술 개념을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박물관 나들길 디자인 의뢰를 받은 후, 마치 1㎞ 길이(255m×4면)의 커다란 캔버스를 얻은 기분이었고, 그 화폭에 코리아를 담아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디자인을 의뢰 받은 후 몇 분이 안 돼서 그렸던 스케치 속에 이미 우리의 태극기에서 찾아냈던 곡선과 직선들이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공시설물에 그림을 그릴 때 디자이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특정한 타깃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용하는 다양한 연령과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디자인하던 공간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공공시설물이 디자인을 배제하고 기능적 특성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바닥 타일은 서울시 메트로의 바닥 타일로 통일했고 사용되는 유리는 모두 강화유리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 것이 바로 공공시설물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초기 시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 등은 서울시 규정에 따라 삽입했다. 우리나라의 상징을 밟고 가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의견이 나왔다. 건곤감리로 바닥 타일을 만들려고 했던 디자이너로서의 욕심을 잠시 접어두고 `땅`을 뜻하는 `곤`만을 바닥에 삽입하기로 타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 라인은 태극에서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힘들었던 협업을 통해 첫날의 상상화였던 스케치대로 길이 255m의 장대한 터널을 하루하루 채워나갔다.

◇전통·역사와 현재가 만나는 박물관으로 향하는 그 마음까지

내가 추구했던 디자인은 시각적인 표현을 넘어 255m를 걷는 8분간의 경험을 연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촌역에서 박물관 나들길로 향하기 직전의 이미지 월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미리보기`와도 같다. 박물관에 쓰인 대리석과 유리 등 건축자재와 메인 컬러를 그대로 활용하여 통일감을 주고 이곳이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후 연결되는 박물관 나들길은 오픈식 때 최광식 문화부 장관이 말했듯이 `현재(이촌역)에서 과거(국립중앙박물관)로 가는 타임머신`과도 같다. 박물관 시설물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전통적으로 치우치게 되면 이촌역이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받는 인상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뿐더러 정작 박물관 안에 있는 유물에 대한 스포일러, 또는 조악한 복제품 이상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하는 설레는 마음을 더욱 즐겁고 평온하게 느낄 수 있는 조명과 음악(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연주곡) 등도 디자인의 개념 설계 때부터 연구했다. 무빙워크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하는 한편으로는 걸음 속도를 조절하여 중간중간에 배치한 8개의 벤치에서 쉬어가면서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최종 논의 과정에서 밋밋한 길에 화룡점정을 찍자며 낸 벤치 아이디어는 한옥의 처마끝과 같이 한국적인 선을 표현하며 디자인했다. 그 색깔과 질감이 전통가구의 그것과 비슷하도록 원목을 끼워 맞추어 만들었다.

본관에서 볼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작들을 만나기 전 애피타이저 이상의 것이 되지 않도록 절제의 미를 완성시키는 데 집중했다. 주인공인 전통 유물들에 대한 예의로서 최대한 표현을 절제했다. 어렴풋이 호기심 어린 느낌만을 선사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LED 조명을 이용한 실루엣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물 수십 종의 실루엣과 태극의 곡선을 단조롭지 않고 신비로운 조명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벽장식은 1~2㎜의 차이만으로도 느낌이 달라지는 타공패턴과의 다툼이었다. 지하보도인 만큼 날씨와 기온 변화에 민감하게 변하는 자재들 때문에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작업이 생각처럼 진척되지 않아 마음이 지루할 때면 한국의 대표적인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을 외국인 관광객들을 포함해 앞으로 매년 200만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통과하게 될 `모던한 코리아`를 표현한 박물관 나들길의 그림을 그려보고는 했다.

앞으로 수 십 년 이상 매년 200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찾아줄 박물관 나들길이 내가 상상했던 아름다운 태극기의 선들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가슴 뛰는 일이다.

◇국가의 브랜드화에 중추 역할을 할 디자인

이렇게 완성된 나의 애국작품 `박물관 나들길`은 태극기의 아름다운 선들을 기초로 만들어 갈 나의 또 다른 수많은 미래상품 디자인들의 뿌리가 될 것이다. 내가 품었던 태극기의 라인을 디자인 아이콘으로 만들려는 12년 전의 꿈이 이제는 날개를 달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명품을 만들어서 세계적 명품들의 경합장인 파리, 밀라노, 런던 등의 유럽시장으로 진출해서 세계 속에 `코리아` 브랜드를 알리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 내가 한국을 위해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태극기도 디자인 아이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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