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미래모임]"망가진 ICT 거버넌스 제대로 복구해야…차관급 전담조직 위상 약화 우려스럽다"

“망가진 ICT 거버넌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제대로 복구해야 한다.”

지난 16일 저녁 서울 삼정호텔에서 올해 처음으로 열린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미래모임)`에 참석한 36명의 ICT 관련 기업·관·학계 전문가들은 여느 때보다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이날은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조작개편안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다. 주제 역시 `ICT 거버넌스`였다. 참석자들의 의견은 “기대했던 전담부처가 만들어지지 않은 점은 매우 아프다”며 “하지만 현 개편안에서도 세부 내용에 따라서 성패가 갈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규제와 진흥, 무 자르듯 분리하기 어렵다

주파수 분배 정책은 규제일까 진흥일까. 사실 명확치 않다. 산업 진흥을 위한 비대칭규제는 `규제의 이름을 한 진흥책`에 가깝다. 이날 기조강연자로 나선 정태명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규제는 진흥 정책의 유용한 수단”이라며 “진흥을 하기 위한 규제는 ICT 전담 조직으로 가고, 방송사 사장 임명권이나 편성규제 같은 정치적 사항에 대한 규제만을 규제 전담 조직에 놔두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도 대부분 이에 동의했다. 김화종 강원대학교 컴퓨터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환경이나 복지 등 다른 분야의 전담부처는 모두 규제와 진흥을 함께 가진다”며 “ICT만 규제와 진흥을 나누는 이유가 명확치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진흥과 규제가 상충할 때도, 독임 장관은 이를 조정할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지만 다른 부처 간 조정하려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분야 일수록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미래정보전략본부장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장 등을 역임한 김원식 법무법인 세종 고문도 “규제와 진흥에 대한 논쟁은 계속 있어왔지만, 오랫동안 공직에서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규제와 진흥을 떼어놓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또 규제와 진흥의 분리를 경쟁업체를 보유한 해외 국가 정부가 더 원하는 것일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우리나라 정부에 ICT 규제·진흥 분리를 계속 요구하고 OECD나 EU도 마찬가지”라며 “한국 정부가 규제를 통해 외국 업체를 차별하고 국내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만호 이노피아테크 대표는 “ICT 분야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생태계를 조성하는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며 “스마트TV, OTT 등 새로운 미디어도 방송과 관련됐는데 규제만을 위한 보수적인 관점으로 규제하면 국내 생태계 조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의견도 제시됐다.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던 김병배 변호사는 “진흥은 보호와 육성, 규제는 경쟁과 처벌이라는 기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지닌다”며 “규제기관이 진흥업무까지 하게 되면 피규제기관이 부당한 규제에 이의제기를 쉽게 하지 못하는 권익 침해도 생겨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흥을 위한 규제는 아예 조금씩 없애야 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ICT의 범위 명확하게 정의해야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 발표에서 세부 기능과 역할에 대한 내용이 제외되자 ICT전담조직의 관할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래모임에선 기본적인 ICT 인프라 고도화와 R&D, 인력양성, 그리고 집중 육성이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산업, 타 산업과 ICT의 융합에 대한 정책적·기술적 의사 결정권 등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된 하드웨어 산업은 정부의 진흥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이번 정부 들어 많이 망가진 콘텐츠·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공정경쟁·생태계 조성 등을 ICT 전담조직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기초 ICT`에 대해 명확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여럿 나왔다. 현 정부 지식경제부가 소프트웨어 육성을 맡았지만, 전력·에너지 등 현안에 밀려 제대로 추진력이 발휘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홍충선 경희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기초 소프트웨어 예산이 많이 삭감됐다”며 “장기적인 기초 ICT 연구개발과 육성을 추진할 거버넌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요즘 ICT 관련 학과를 졸업한 학생 중 90% 이상은 대기업만 선호한다”며 “이런 환경에선 `벤처 영웅`이 나오기 힘들다. 차기 정부에선 소프트웨어 기반의 벤처를 육성할 수 있는 대단지가 필요하고, 전담부처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승삼 아모텍 부회장 역시 “기초 ICT에 대해 좀 더 부각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ICT 전담부처에서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지원을 확실히 해서 기술적 자립을 이뤄내야 한다”며 “반도체·단말기에 대해선 기존 거버넌스를 유지하되 그 안에 들어가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운용체계 등은 집중적인 육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 부회장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은 뚝심있는 연구가 ICT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태명 교수는 “ICT 전담부처의 가장 큰 목적성도 소프트웨어에 있어야 한다”며 “현 지경부의 소프트웨어 부서와 행정안전부 정보화 부서, 방통위 인터넷통신 부서 등을 융합해 거버넌스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차관급 전담조직은 약해…국회 역할 기대한다”

유민봉 인수위 국정조정기획분과 간사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며 “미래창조과학부 내의 차관급 ICT 조직도 공약했던 ICT 전담조직과 같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차관급 조직의 위상에 대해서 `전담 조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병초 교수는 “5~6개 대부처 체제에서 ICT 전담부처가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지금 같은 17부 3처 17청의 부처개편안에서 ICT 전담부처가 없는 것은 차기 정부의 의지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의 부족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모든 산업분야·정책에서 ICT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에도 차관급 전담조직을 두는 것은 부처 간 관계 측면에서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원식 고문은 “차관급 ICT 전담조직은 다른 부처와의 관계에서 볼 때 매우 잘못됐다”고 질타했다. 김 고문은 “모든 부처에서 하는 일에 ICT가 포함된 만큼, 우리나라 정부 구조 내에서 ICT 정책은 다른 부처와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하다”며 “차관이 여러 부처 간 ICT 관련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는 힘들다”고 우려했다. 그는 “오히려 ICT 전담 장관 아래 다른 분야 전담 차관으로 구성된 조직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국회의 조정 역할에 희망을 걸었다. ICT전담조직의 위상에 대해 정부조직 관련법을 통과시키는 국회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참석자는 “현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없앤 것을 계기로, 많은 국민들이 ICT 전담부처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며 “예전 정통부의 과오를 범하지 않을 새 전담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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