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울렸다. 은행이다. 5000만원 이용했던 마이너스 통장 취소 전화다. 어렵게 2억여원 신용보증을 연장한지 얼마 안됐다. 숨이 탁 막혔다. 한두 달만 더 있으면 꿈에 그리던 솔루션(ERP) 개발을 마치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수년 함께한 임직원 불만은 높아만 갔다.
지난해 9월 인쇄업체 이모션티피에스 김재택 사장이 처한 상황이다. 김 사장은 “솔루션은 거의 완성 단계인데 에러가 발생했고, 직원과 의견충돌은 심해졌다”며 당시를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고 표현했다. ERP솔루션은 김 사장이 회사 혁신 일환으로 5년째 개발 중이었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답답한 직원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 건강진단사업` 신청을 제안했다. 사장은 받아들였다. 진단팀을 보자마자 사장은 완성 단계인 솔루션을 보여주며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진단팀은 우선 진단을 제안했다. 곧 문제점은 나왔다. `사장`이었다. 영업을 총괄 지휘하던 사장이 솔루션 개발에만 매진하자, 실적이 급락한 것. 사장이 중심을 잃자 직원도 갈피를 못 잡았다.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2010년 매출 25억원에서 2011년에는 15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는 더 악화됐다. 8월까지 2·6월 두 달을 제외하고는 매월 영업적자였다.
그럼에도 김 사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솔루션 개발만 끝나면 모두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봤다. 하지만 당장 채택해야 할 솔루션을 직원이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실적 악화상황에서 대표가 생소한 솔루션을 개발해 사용을 강요하자 내키지 않았던 것. 이은빈 이모션티피에스 부장은 “직원을 배려하지 않고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라고만 했고, 자연스럽게 직원과 관계가 나빠졌다”고 상황을 전했다.
진단팀은 김 사장을 설득했다. 바뀌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성희 중진공 서울북부지부 부장은 “매출은 줄고 고객 불만은 이어지는데 사장이 직접 챙기질 않고 직원에게 화만 냈다”며 “대표가 변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처방으로 △한시적 개발 후 영업에만 집중 △직원 의견 경청과 소통 △직원에게 화내지 말 것 세 가지였다. 진단팀은 그치지 않았다. 실행을 담보하기 위해 김 사장 자필 `실천선언문`을 받았다. `영업에 전력을 투구한다` `화를 내지 않는다`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신바람직장 만들기 선언문`과 `칭찬 스티커판`도 만들었다.
반응은 놀라웠다. 회사가 변했다. 사장이 귀를 열고 다가서자 직원은 맘을 열었다. 직원이 솔선수범으로 원가절감 등 기업 발전방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채택을 주저했던 솔루션도 직원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익혔다. 실적이 개선됐다. 당장 9월 전달보다 매출이 두 배 늘었다. 영업실적은 흑자로 돌아섰다. 3개월여 노력으로 지난해 매출을 24억까지 끌어올렸다. 영업이익도 2억~3억원을 본다. 올해는 매출 40억원에 영업이익 7억원을 예상했다.
김 사장과 임직원은 건강 진단팀에 감사를 표했다. 김 사장은 “마치 마약에 취했던 것 같다”며 “아무리 좋은 회사도 직원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진단팀원인 김익환 중진공 전문위원은 “기업 CEO는 회사가 위기인지 깨닫지 못한다”며 “크지 않은 병도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해지듯이 중소기업은 조그마한 문제를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이모션티피에스 진단 내용과 개선방안
※자료:중소기업진흥공단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