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251>파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파묻혀야 한다!

사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으로 맺히는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맺힘.

바로, 사무침이다.

-안도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누군가에게 사무친다는 것은 사무칠 만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의미다. 사무치기 위해서는 뭔가에 빠져 파묻혀야 한다. 상대의 가슴 속에 파묻히고 싶은 그리움이 강렬할수록 사무침의 강도도 높아진다. `파묻히다`는 두 가지 역설적인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첫 번째 `파묻히다`의 의미는 주변의 다른 것들이 훨씬 더 많거나 커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드러나지 못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주변의 소리가 너무 커서 내 말이 파묻히고 말았다는 말에 두 번째 `파묻히다`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 소리는 주정꾼들의 소란 속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파묻히다`는 어떤 사물이나 일거리가 주변에 잔뜩 쌓여 그것에만 몰두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책 속에 파묻혀 저자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저자와 호흡을 같이 나누는 듯 했다는 의미가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 두 번째 의미로 파묻혀야 사무칠 수 있다.

책 속에 파묻혀 글을 써야 그리움에 사무칠 수 있다. 한 동안 현실과 거리를 두고 뭔가에 파묻혀야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전대미문의 창조가 세상을 향해 빛을 볼 수 있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고독을 벗 삼아 일정기간 파묻혀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사무칠 수 있는 작품이 탄생한다. 자신의 본질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남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면 대중 속에 파묻힌다. 대중 속에 파묻혀 한 시대의 흐름에 떠밀러 가면서 살기보다 대중의 마음에 사무치기 위해서는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일정한 기간 동안 파묻혀야 한다.

키 크는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키는 큰다. 자신과 싸우는 파묻히는 잠적과 잠복기간이 잠자는 세상을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잉태의 시간이다. 파묻혀 책을 읽어야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파묻히지 않을 수 있다.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는 책에 파묻혀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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