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0개 기업이 생겨나고 그 중에 9개가 실패하는 곳. 겨우 10%지만 짜릿한 성공 스토리에 고무된 젊은이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어 새로운 도전의 불씨를 지피는 곳. 벤처산업의 메카이자 혁신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실리콘밸리를 말할 때면 스탠퍼드·버클리대학 등에서 운영하는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꼽는다. 스탠퍼드 대학에는 100여 개의 학내 벤처가 활동하고 있다. 휴렛패커드·선마이크로시스템스·시스코·야후·구글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창업자들이 모두 스탠퍼드 출신임을 고려하면 학내 벤처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역동적이다. 페이스북·트위터 등이 큰 성공을 거두자 맨해튼의 월가로 향하던 많은 젊은 인재들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실적이 양호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곳에 소재한 4만여 기업 가운데 매출액 1억달러 이상이 594개, 20억달러 이상이 128개에 달했다.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은 실리콘밸리의 현재 분위기를 `번영의 버블(Bubble)`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러한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가. 원천은 잘 구축된 `벤처 생태계`에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나 기술을 무기로 창업하면 이후에는 잘 짜인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멘토링 및 자문, 마케팅, 파이낸싱, 법률 및 회계 등 다양한 분야가 결합해 움직이고 대학은 고급 인재를 공급하면서 생태계를 지탱해 간다. 유기적인 생태계는 젊은이의 꿈을 담금질하는 용광로다. 차고에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세상을 바꾸는 비즈니스 모델이 창조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강한 나무는 저절로 기둥이 된다(彊自取柱)”는 말은 이곳을 가리켜 하는 얘기 같다.
실리콘밸리가 아직 먼 얘기로 들린다면 `창업국가`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어떤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 `개인보증`을 요구하지 않아 `연쇄창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속 주어지는 재기의 기회 등은 이스라엘을 벤처창업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해외기업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63개가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들과 비교해 우리가 처한 환경은 사뭇 다르다. 리스크는 `용기`로 극복하고 실패는 `관용`으로 이겨내며 일은 `스톡옵션과 보수`로 보상받으면서 선순환 경제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런 환경은 ICT산업의 심한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스마트폰, 평판 TV, D램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하드웨어(HW) 부문에서 우리가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반면에 바이오기술(BT), 환경기술(ET), 문화기술(CT) 등 미래기술과 융합해 신기술을 창출하는 소프트웨어(SW) 부문은 너무 보잘 것 없다.
이런 문제는 고용구조에서도 드러난다. ICT산업 가운데 SW 및 정보서비스의 고용 비중은 2000년 14.7%에서 2010년 24.6%로 늘어났다. 그런데 ICT 전공자들은 HW 및 통신서비스 위주의 대기업을 선호하는 반면에 SW 분야는 3D 업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저임금과 인력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한편으로는 제2의 벤처 붐이 일고 있지만 사람·아이디어·자본이 어우러져 성과를 내는 토양은 아직 척박하다.
ICT산업의 균형발전과 바람직한 벤처 생태계 구축에 정부가 발 벗고 나설 때다. 새로 출범할 정부가 ICT를 타산업과 접목해 새 시장을 창출하고, SW 분야를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창업을 활성화하는 `창업국가 코리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반갑다. 유기적인 벤처 생태계가 경쟁력의 원천임을 직시하자. 실리콘밸리의 비옥한 토양을 우리의 땅으로 옮겨오는 일에 바짝 속도를 낼 때다.
오영호 KOTRA 사장 youngho5@kotr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