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건축학개론

지난해 개봉된 영화 `건축학개론`은 복고와 첫사랑이란 키워드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이제 와서 새삼 복고니 첫사랑을 들먹일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주인공 두 사람 만남의 모티브가 된 영화 속 건축학 교수의 과제는 가끔씩 생각이 난다.

자신의 집에서 학교 오는 길 그리기, 자기가 사는 동네 여행, 자기가 사는 곳에서 버스로 가장 먼 곳 여행 그리고 그곳에 살고 싶은 좋은 곳 여행. 교수가 내준 이 과제를 같이 하면서 영화 주인공의 인연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잠깐씩 보여주는 당시의 집과 길 그리고 살던 동네의 모습이 더 복고의 향수를 자극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현실은 건축과 집이 사는 곳이 아닌 재산증식의 수단이 됐다. 우리가 사는 곳, 다니는 길은 아무런 감동과 영감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그래서 아파트 공화국이다. 이 땅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사람과 현실에 맞지 않는 서구의 건축과 도시계획을 무계획적으로 가져다 쓴 지나온 날의 덕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쓰임에 충실하고 많은 것을 누리지 않는 검박함이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건축이라 한다.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 나눔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건축은 삶의 중요한 환경이다.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공간은 비워있어야 하고 유연해야 하며 담아내야 할 것은 삶의 흔적이다. 물론 어느 한 건축가의 말이 정답일 수는 없다. 다만 이야기가 있는 집이 가지는 미덕에 대해 수긍하는 사람도 많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맞는다. 당선인은 민생을 강조한다. 다행한 일이다. 어쩌면 새로운 대한민국은 지나온 날들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건축이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작업이듯 정치가 무엇을 담아낼까. 유연한 공간에 가짐보다 쓰임, 더함보다 나눔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조성묵기자 csmo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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