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재부품 산업이 용솟음치고 있다. TV, 휴대폰 등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완제품과 함께 무역 1조달러 달성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세계 5위 소재부품 강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지난 2001년 소재부품 수출 10위 국가에서 10년도 채 안돼 5계단이나 상승했다. 기초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산업 특성을 감안할 때 눈부신 성과로 자평해도 손색이 없다. 또 지난해 소재부품 무역수지 흑자는 868억달러로 전체 무역 흑자(308억달러)를 뛰어넘으며 진정한 수출 효자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본지는 올 한해 `소재부품 초일류 꿈꾼다`를 대주제로 핵심 소재부품 산업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봤다. 소재부품 산업은 이제 경제위기 극복의 주역을 넘어 무역 2조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세계 4위 소재부품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다.
◇신천지에 도전하라
소재부품 산업군 가운데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아날로그 반도체라는 새로운 신천지에 속속 발을 디디며 성과를 기록 중이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에 육박하는 산업 규모와 함께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급성장에 힘입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고 시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이을 후보로 꼽힌다. 또 거대 장비 산업이 아닌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산업으로 국내 업체들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시장이다.
가장 유망한 분야는 RFIC, 전력반도체, 센서 등이 꼽힌다. 아직 TI, ST마이크로, ADI, 인피니언 등 세계적인 업체들과의 간격은 크다. 하지만 가능성을 보인 업체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아날로그 기술이 기반인 LCD 드라이버 IC를 통해 국내 최대 팹리스 업체로 발돋움한 실리콘웍스는 지난해 연매출 3000억원을 돌파했다. 또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4년만에 1000억원의 매출을 넘어선 실리콘마이터스도 국내 대표적인 아날로그 반도체 업체로 자리잡았다.
아날로그 반도체라는 신천지에서 국내 팹리스 업체들의 성공 신화를 잇기 위해서는 우선 넓은 시장을 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바일 등 늘 비슷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계를 깨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대만 등 경쟁국들과의 기술 격차를 확대하기 위한 기초 인력 양성은 그 전제 조건이다.
◇재도약대 오른 부품산업
전자 제품의 혈관인 인쇄회로기판(PCB) 산업도 스마트 열풍에 힘입어 다시 한번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세계 PCB 시장은 600억달러 규모에 육박했다. 국내 시장은 75억달러로 전체의 13%를 차지하며, 각종 원부자재 및 설비, 임가공을 합하면 15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이어 주력 부품 산업의 위상이 공고해진 셈이다.
국내 업체들은 경성 PCB와 반도체 기판 등 전통적인 기술은 물론이고 연성(F)PCB 및 차세대 PCB 분야에서도 착실히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연매출 1억달러를 넘긴 중견 PCB 업체는 16개로 허리가 강해진 것은 물론 상위 5개사는 매출액 1조원 고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PCB 업체들은 제조 설비와 자재 조달 역량에서 일본, 대만, 미국 등 경쟁국보다 뒤쳐진다는 분석이다. 국내 PCB 원자재 업체가 16개로 전문 가공업체 수(445개)의 4% 수준에 불과하다. 기판, 원자재, 설비를 포함한 PCB 산업 생태계의 균형 발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선도 업체는 출혈 경쟁을 지양하고 글로벌 마케팅 역량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 또 후방 산업 육성을 위해 산학연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성장엔진 달자
반도체와 함께 주력 수출산업 위상을 지키고 있는 평판디스플레이(FPD) 산업은 `제3의 물결`을 맞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대형 LCD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플렉시블 및 투명 디스플레이가 산업의 경쟁 구도를 바꿀 미래 시장으로 꼽혔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경쟁국보다 3년 이상의 기술 격차를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기술력 우위를 더욱 확고히 하고 시장을 선점해야 맹주의 자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계 1위 수성의 갈림길에 놓였지만, 뛰어난 양산 및 가격 경쟁력과 해외 경쟁사 대비 높은 수익성은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강한 체력이다.
하지만 패널 중심의 산업 구조는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할 과제다. 후방 산업인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기초 역량을 더욱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또 장기적인 안목에서 원천 기술을 꾸준히 확보해야 한다. 제품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핵심 원천 기술이 없이는 장기간 지속 성장 가능한 토대를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미래를 선도하라
D램과 낸드플래시를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는 지난 20여년간 수출 품목 1위로서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뿌리이자 기반이 됐다. 가히 `기술 한류(韓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균형 발전시켜야 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미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20나노급 이후 한계에 부딪힌 미세회로 기술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메모리(P램, M램)는 세계적으로 연구개발과 시장 창출을 우리나라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절실하다. 메모리 중심이던 삼성전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가능성을 예견하고 장기간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오는 2020년 400억달러 수준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 능력으로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파운드리 및 팹리스 업체 간 강력한 공조체계를 만들고 수평적인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종석차장(팀장) jsyang@etnews.com 윤건일·문보경·이형수·정미나·윤희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