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스프린트, 美 통신시장 게임의 룰 바꾼다

주요 이통사 모두 외국 자본…4G 시장 겨냥한 무한경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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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프트뱅크가 미국 3위 통신사업자 스프린트를 201억달러(약 22조3000억원)에 인수한다. 이로써 버라이즌(영국 보다폰), T모바일(독일 도이치텔레콤)에 이어 스프린트까지 미 주요 통신사 모두 외국 자본이 대주주가 되는 셈이다. 소프트뱅크의 두둑한 총알을 장전한 스프린트가 미국 통신시장 `게임의 법칙`을 어떻게 바꿀지 주목되고 있다.

◇일본 최대 규모의 해외 기업 인수…메트로PCS 인수도 검토

소프트뱅크는 15일(현지시각)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프린트를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매입 금액은 기존 지분 70%(121억달러)와 새롭게 발행할 신주(80억달러) 등 총 201억달러를 투입한다. 소프트뱅크는 주거래은행인 미즈호뱅크 등에 융자를 신청할 계획이다. 스프린트의 경영은 현 CEO인 댄 헤세가 계속 맡기로 했다.

합병은 내년 중반에 완료된다. 이번 인수는 일본 기업이 미국 기업을 사들인 것 중 최대 규모다. 두 회사의 가입자는 9000만명을 넘어선다. 소프트뱅크는 이 가입자 기반을 바탕으로 앞으로 전 세계 통신시장이 LTE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술표준화 주도, 구매경쟁력 확보 등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두 회사 모두 에릭슨 통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당장의 호환성도 높다.

향후 소프트뱅크는 이후 미국 5위 통신사인 메트로PCS를 인수하거나 스프린트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초고속인터넷업체 클리어와이어도 인수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에다 메트로PCS까지 손에 넣을 경우, 미국과 일본을 망라하는 통신망을 구축해 차이나모바일과 버라이즌 뒤를 잇는 세계 3위 통신기업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현재 메트로PCS는 T모바일의 대주주인 도이치텔레콤이 인수를 추진 중이지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직접 협상에 나서 주주를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자본 끌어들여 4G서비스·요금경쟁 확대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 인수를 완료하게 되면 미 이통시장은 토종 자본과 외국계 자본과의 경쟁구도가 펼쳐지게 된다. 버라이즌의 대주주(45%)는 영국 보다폰이며 T모바일은 도이치텔레콤의 자회사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연방통신위원회(FCC) 등 규제당국이 이번 인수에 대해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승인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기간산업인 통신사업에 해외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 배경이 뭘까. 전문가들은 일본 자본이 현재 답보 상태에 있는 미국 이통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주파수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차세대 투자를 확대하고 버라이즌과 AT&T가 독점하고 있는 미 통신시장에 LTE 등 4G 서비스 경쟁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는 소프트뱅크가 보다폰재팬을 인수, 1년 만에 사상 최대 순이익을 낸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저가 요금제를 내놓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의 아이폰 보조금 전략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채를 갚고 회사를 조기에 회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관건은 LTE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건하게 잘 구축되는지에 달려있다. 현재 4가지 통신방식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2017년까지 이를 통합하는 작업이 잘 진행되어야 한다.

월프 피에치크 BTIG 애널리스트는 “(소프트뱅크와의 협력을 통해) 스프린트가 버라이즌과 AT&T 사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포지션을 제대로 찾았다”고 평가했다.

◇주가 폭락해도 갈 길은 간다

스프린트 인수 소식이 전해진 지난 12일 도쿄 증시에서 소프트뱅크 주가는 17% 폭락했다. 이어 15일에도 5.3% 떨어지며 장을 마감했다. 지난 2월 이후 8월 만에 최저가로 떨어진 것. 순부채만 100억달러가 넘는 데다 강력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스프린트를 사들여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 지나치게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공격적인 M&A로 성장해온 소프트뱅크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보다폰재팬을 2억엔에 인수할 당시 사흘동안 주가가 30% 폭락했다. 지난 10일 일본 4위 통신업체 이엑세스 인수 때에도 주가가 10% 이상 하락했다.

손정의 회장은 이날 “(보다폰 인수도) 도박을 했기 때문에 결과도 있었다”면서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더 큰 위험을 겪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일본의 고질적인 엔고와 저금리를 감안하면 손 회장의 한 수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표] 美 이통시장 점유율 및 대주주 현황

(자료:각 사 종합)

소프트뱅크+스프린트, 美 통신시장 게임의 룰 바꾼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