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국가안보와 기술, 그리고 특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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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간 영토 문제로 긴장이 고조되고 삼성전자·애플은 세계 각국에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 무기로 전쟁해 얻는 것이 영토고, 투표로 얻는 게 표며, 특허전쟁으로 얻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다.

중요한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활용이 중요하다. 기술 개발과 안보 문제의 관련성에 관한 적절한 역사적 사례로 임진왜란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 조정에서도 조총의 존재를 알았다는 역사적 기술이 있다.

특히 대마도 태수 평의지가 조선 조정에 몇 정의 조총을 진상했으나 조총을 시험해본 조선 관리는 조선의 활보다 조총의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며 군기사 창고에 방치했다고 한다. 일본이 철포를 도입한 지 5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명중률이 높은 병기로 조총을 개발할 동안 우리는 기술을 가졌지만 왜구 동태를 간과하면서 왜구의 침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임진왜란을 겪었다. 조선 선조 때 조정이 그랬던 것처럼 내부 갈등으로 이웃한 적의 기술 진보를 간과해 적이 더 위협적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국가의 존립에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모른다.

국가 차원뿐 아니라 기업 활동에서도 경쟁 기업이나 기술을 과소평가해 낭패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안일하게 최고를 과신한 일본 소니가 조직의 철학을 상실하고 자신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위기에 빠진 것이 좋은 예다. 혹자는 소니 몰락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여전히 기술이 있으므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더구나 소니는 세계 최대 특허관리회사(일명 특허괴물)인 인텔렉추얼벤처스(IV)에 투자하고 있어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다.

IV는 거대 자본을 배경으로 세계에서 특허뿐 아니라 아이디어까지도 매집해 특허권을 침해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도 이들과 특허 라이선스를 맺고 있다. 흥미롭게도 특허괴물로부터 가장 많은 소송을 당하는 삼성전자가 과거에 이미 IV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두 번이나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고 결국 2010년 엄청난 금액을 주고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만약 삼성전자가 투자 제안을 수락했다면 많은 금액의 로열티를 지급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기업이 자사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경쟁 기업과 기술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존폐 위기에도 직면할 수 있다. 승자 독식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경쟁 기업·기술 관리는 사활의 가치가 있다. 나아가 기업 성패는 기업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국가 안보는 전쟁이나 국경분쟁·테러리즘과 같은 위협으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보존한다는 뜻의 군사 안보를 의미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 안보 개념은 경제 안보, 생태 안보, 사회 안보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경제적 영역에서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자국의 번영과 복지, 경제 발전을 위한 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과학 기술력에 의한 경제 안보가 21세기 국가 안보의 새로운 요소로 떠올랐다. 국제경제·무역을 안정적·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불가결한 조건이 되면서 경제 안보의 충족이 중요한 국가목표가 되었다.

이제는 특허괴물 현상이나 대기업 사이의 특허전쟁을 단순히 민간 분야의 사적 분쟁으로 간과할 수 없다. 국가는 경제 안보 측면에서 분쟁의 영향을 평가하고 경제 안보 위협 요소를 통제하며 관련 분쟁의 양상을 예측하고 미연에 방지하거나 회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윤선희 한양대 교수·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장 shyun@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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