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율가전기기 보급 확대는 전력난 해결의 핵심입니다. 제조사와 국민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고효율가전제품 사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제고와 제조업계의 기술개발 노력이 어우러진 시장이 조성돼야 합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전력예비율도 안정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9.15 정전사태 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는 전력피크에 정부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더욱이 겨울이 다가올수록 전력사용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또다시 `전력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자신문이 지난 1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개최한 `에너지고효율 기기 전문가 좌담회`에 참석한 정부와 시민대표들은 소비자와 가전기기 제조업계가 공생하는 녹색마켓 조성이 시급하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고효율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결국에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소비자가 이해하고 제조업계는 고효율 기술 개발을 지속하는 선순환구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고효율가전기기 확산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확인됐다.
간담회에서는 고효율 가전기기 구입시 인센티브 역할을 하는 전력효율향상사업의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50% 늘어난 750억원으로 책정됐다는 정부안이 최초로 공개됐다. 정부가 추진해온 효율관리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달성한 제조업계의 노력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주목받았다.
◆참석자(가나다 순)
강홍식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이사
김인수 에너지관리공단 에너지기술이사
박정호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책임연구원
안성일 지식경제부 에너지관리과장
이은영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그린데일리 부장
◇사회(김동석 전자신문 그린데일리 부장)=올해 하계피크는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아직도 `전력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한다. 전력공급보다 수요가 그 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9·15 정전사태 이후 전력수급 현황과 현재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안성일(지식경제부 에너지관리과장)=올해는 예년보다 빠른 6월부터 전력피크 대책을 추진했다. 8월 중순경 7429만kwh로 최대 전력사용량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위기가 지속됐지만 비상발전기 가동, 조업시간·하계 휴가 분산 등 기업의 적극적인 수요관리 사업 참여와 민간분야의 에너지절약 활동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상황을 보더라도 갑자기 기온이 상승할 경우 예상치 못한 전력난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지식경제부는 가을 국민발전소건설주간을 선포했다. 고효율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고 보급 확산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사회=국민의 삶이 향상되면서 가전제품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국내 가전제품 효율관리등급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김인수(에너지관리공단 에너지기술이사)=효율등급은 소비자들이 효율이 높은 에너지절약형 제품을 쉽게 인식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제도다.
1992년부터 35개 제품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TV,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에어컨 등 가정 에너지 소비의 58%를 차지하는 5개 품목을 에너지다소비 품목으로 지정해 효율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그동안 성과를 살펴보면 가전제품의 용량,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전체 에너지소비는 상당히 억제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어컨과 세탁기의 효율등급·1등급 기준은 지난 3년동안 각각 24%, 17% 상승했는데 제조업계는 평균 22%, 15%까지 제품 효율을 상승시켰다. 제도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는 증거다.
냉장고 용량은 지난 3년동안 31%, 판매량은 25%나 증가했지만 국가 전체 에너지소비량은 19% 가량 증가했다. 세탁기, 에어컨도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OECD 국가들은 이미 건물과 제품 등에 대한 에너지효율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 효율관리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박정호(한국산업기술시험원 책임연구원)=세계 60개국이 에너지라벨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90% 이상이 의무제도화했다.
미국은 최저소비효율기준(MEPS), 에너지스타, 에너지 가이드 라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스타제도는 신뢰가 커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스타 인증이 필수다. 제품 판매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럽과 일본 등 여러 국가가 에너지스타를 도입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유럽은 최저소비효율 기준을 제시하는 에코디자인 지침과 에너지효율 등급표시에 대한 규정인 에너지라벨링 지침이 있다. 제품에 대한 친환경설계를 의무화하고 있고 규격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제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품 효율이 높아지자 등급을 세분화하기도 했다.
◇사회=가전산업은 해외 수출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 에너지효율관리제에 국내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국내 가전제품의 효율 수준은 어떠한가.
◇강홍식(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이사)=유럽이 친환경설계지침(EUP)을 제정했다. 제품 라이프사이클 동안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을 평가하는 도구다. 유럽 또한 법으로 에너지효율을 높이도록 주문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계의 준비가 상당히 잘 돼 있다. 정부가 대기전력, 효율등급 규제를 강하게 펼쳤는데 효율향상과 관련한 요소기술은 우리나라 제조업계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TV,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확보했다. 냉장고는 유럽최초로 `A++`를 획득했고 세탁기는 `A+++`다.
업계 노력을 인정하고 1등급 제품을 개발하면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제조업계의 효율 향상 기술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다. 지금 유럽에서는 오히려 디자인 등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사회=최근 들어 가정주부들의 관심사는 전기요금이다. 실제 가전제품 판매점을 찾는 소비자들은 에너지효율등급을 꼼꼼히 확인하는 소비행태가 자리잡고 있다. 고효율 1등급 제품을 사용했을 때 가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절감효과는 얼마나 되나.
◇김인수=우리나라 가전제품 효율은 누차 강조하지만 세계적으로 정상권에 속해있다. TV는 최근 실시한 SEAD 어워드에서 중소형과 대형제품 각각 삼성과 LG가 최고 효율상을 수상했다. TV를 포함한 주요 5대 가전제품을 5등급에서 1등급으로 교체한다면 월간 최대 270㎾h를 절감할 수 있다. 35개 제품 절감효과 잠재력을 계산해 보면 전국적으로 연간 39억㎾h를 절약할 수 있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안성일=1등급 제품을 구입한 각 가정에서 제품의 수명을 고려하면 에너지절약 효과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제품은 한번 구입하면 약 10년 이상 사용한다. 최근 교체하는 소비자 중에서도 오래된 제품을 교체하는 사람이 많다. 1등급 제품으로 교체하는 효과가 훨씬 커지는 것이다. 제품 교체 주기를 파악할 순 없지만 5등급 제품을 1등급으로 교체하면 연간 34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월 평균 3만원의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사회=4기 국민발전소가 출범하는 등 정부가 에너지절약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9·15 정전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가전제품 사용행태에 변화가 있나.
◇이은영(소비자시민모임 기획처장)=정부가 공급위주의 수요관리 정책을 펼칠 때는 전기 과소비 경향이 컸다. 일례로 많은 가정이 석유에서 전기로 난방에너지원을 전환했지만 오히려 비용은 더 저렴했다. 편하고 싸니까 전력사용이 계속 늘어났다. 일반 가정의 가전제품수는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이로 인해 일인당 전력소비량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9·15 정전사태가 전력수급의 불안함을 알려준 신호로 작용했다. 소비자들은 전기 절약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다. 여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가 실천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각계각층에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 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은 전체 물가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 인상이 에너지절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은영=수요관리에 있어 대표적인 방법이 교육과 가격변화다. 에너지 소비행태에 직접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가격을 올리면 그 순간 소비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미 가전제품 보급이 많이 늘었다. 구입한 제품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제품이 별로 없던 과거에는 가격에 의한 조절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가격으로 통제하기에는 외적 요인이 너무 많이 발생했다. 이제는 가격 변화가 행동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김인수=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원별간 왜곡된 가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국가 전체 에너지 가운데 냉방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2%다. 우리는 거의 전기에 의존하지만 일본은 냉방에너지의 23%를 가스냉방으로 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특정 건물에 가스냉방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지만 가스가격이 전기요금보다 비싼 이유로 보급이 잘 안 된다. 일본처럼 가스냉방 비중이 높으면 여름철에 전력난을 겪지 않을 수 있다. 에너지믹스는 강제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결국은 가격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에너지믹스를 효율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가격정책이 필요하다.
◇안성일=물가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석유·가스 가격은 통제하기도 어렵다. 정부도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가 아닌 에너지원으로 냉·난방을 유도하기 위해 기술지원과 경제적인 보조를 진행하고 있다. 가스냉방, 제습식 지역냉방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격도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전기사용 증가는 편리성에 기인한다. 결국 효율향상이 중요하다. 전기 사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관련 제품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대안이다.
정부는 효율관리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서버나 라우터, 스토리지 등도 기준 설정했다. 다만 국제적인 추세를 보면서 조절해 나갈 것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도 마찬가지다. 고효율기자재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전력효율향상 사업 자금도 확대할 예정이다.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올해 예산보다 약 50% 증가한 750억원을 정부안으로 제출했다. 에너지효율향상에 있어서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사회=지난해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전체 전력의 15%를 절약했다. 에너지 절약에 대해 정부와 업계, 그리고 소비자들이 해야할 역할은 무엇인가.
◇강홍식=이제는 `스마트 소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IT와 접목한 에너지관리시스템과 스마트그리드 등이 현실화되면 스마트 소비가 실현될 수 있다. 에너지 소비를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교한 판단이 가능해 진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은영=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실천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실천에 따른 이익을 알려줘야 한다. 고효율기기가 아무리 많이 시장에 나와도 비싸다고 생각하면 소비자는 구입하지 않는다. 초기 구입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다. 이러한 부담을 해소하려면 이 제품을 구매했을 때 얼마만에 투자비를 회수 할 수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린마켓이다. 소비자가 녹색구매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확신을 줘야 한다.
업계도 마찬가지다. 고효율 제품 소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까 1등급 제품의 외관을 화려하게 해서 고가의 제품을 소비하도록 어필한다.
지금은 소비자가 고효율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녹색마켓을 조성하고 기업이 올리는 매출이 다시 효율향상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안성일=환경부에서 도입한 그린카드처럼 녹색소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제품의 효율기준을 높이고 업계가 기준에 부합하는 고효율 기술을 개발해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부가 효율바다라는 사이트를 구축해 주요 가전제품의 효율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이와같은 이유다. 정부는 고효율제품 소비 촉진을 위해 크게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검토하고 있다. 세율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내년부터 1등급 제품에 대해서는 개별소비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회=동계피크가 코앞이다. 전기사용 소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은영=제조업계에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최근 1인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빌트인 제품 보급이 늘고 있다. 일부 빌트인 제품은 플러그를 뽑을 수도 없고 효율도 낮다.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없다는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있다. 빌트인 제품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안성일=지난해 9·15정전의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사과의 말씀을 다신 한번 드린다. 전력난 극복을 위해서는 국민 참여, 노력, 이해가 대단히 중요하다. 2014년 전력수급상황이 조금 나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까지 국민과 기업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천할 수 있는 모든 행동에 참여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에너지절약에 대한 실천을 당부드린다.
정리=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