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표지 디자인이 아주 훌륭하다. 하얀 표지에 검은 색 글자가 박혀 있어 시선을 잡아 끈다. 수동 타자기 서체를 가져다 쓴 책 제목은 `약탈`이라는 말 뜻과 잘 어울린다. 그 아래 조그만 빨간 계산기까지. 깔끔하다. 그러나 표지를 한 장만 넘겨도 이 책은 깔끔한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빚 때문에 눈물짓는 사람들을 위하여.”
빚을 지는 것이 깔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가계의 60%가 채무 가구이고 가계 부채 총액이 1000조원이라고 강조한다. 빚이 어느 한 두 사람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적 고통이 된 현실이 우리를 깔끔하지 못한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1000조원이라는 숫자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와 닿지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는 게 이해하기 편하다. 쉽게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던 학자금 대출은 몇 년째 통장에서 소리 없이 새나간다. 카드 값을 막을 돈이 부족해 늘 허덕인다. 전세자금 대출 몇 천 만원은 기본이다.
결혼이라도 할라치면 빚이 억대로 커진다. 결혼 비용을 카드로 결제하는 바람에 신혼생활은 카드비 폭탄과 함께 시작된다. 이쯤 되면 대출이 잘되는 내가 능력이 좋은 거라고 좋아해야 하는지 애매해진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은 당연히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과욕을 부린 내가 잘못이고, 제때 갚지 못한 나의 불성실함이 문제다. 저자는 “당신 책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물론 `책임 면제`는 아니다. 단지 대출을 해준 쪽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발적이고, 신선하다. 물론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말을 두고 “경제학 교과서에서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고 했던 어느 기업 회장의 말처럼 대출을 해준 쪽도 잘못이라는 말 역시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
저자가 이런 개념을 도입한 근거는 복잡하지 않다. “빚이란 채권-채무 관계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빌리는 사람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은행이 대출을 해주는 것은 투자다. 그러므로 대출이 잘못됐을 때는 잘못 투자한 사람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 논리다.
논쟁이 예상되는 주장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빚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못 갚을 만큼 빌려 준 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지금의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제윤경, 이헌욱 지음. 부키 펴냄. 1만3800원.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