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사회에서 서남표 총장 계약해지 안건 상정이 무산되면서 서 총장은 시간을 버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사회가 서 총장 계약해지 안건처리를 미룰 때는 상응하는 조건을 내세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해 사퇴 향방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 총장이 명예로운 퇴임 수순을 밟을지, 아니면 남아있는 2년 임기를 모두 채울지 현재로는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본래 서 총장은 평소 올해까지만 임기를 수행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측근 입을 통해 피력해 왔지만, 레임덕을 우려해 문서 등으로는 약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사장-총장 합의안 보니=골자는 세 가지다. 총장 거취는 자율에 맡기고, 후임 총장을 함께 선임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첫째 타협점이다. 학교 안정과 개혁을 바탕으로 지속발전을 도모하고 학내 혼란과 갈등 해결에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 두 번째 약속이다. 셋째는 특허명의 관련 고소건과 발전적 학내문화 조성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시일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뭘 하겠다는 일정이 없다. 혼란을 부추길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후임총장 선정건도 서 총장이 거취를 결정해야 나갈 수 있는 진도다. 서 총장 측은 지난 간담회에서 검찰조사중인 특허명의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사회가 퇴임 안건 상정을 유보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위임`이란 단어도 논란이다. 양측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 총장이 모든 권한(임기포함)을 이사장에 위임한 건지, 아니면 이사회 전 합의한 사항을 이사장이 발표하도록 위임한 건지 불분명하다.
◇막후 접촉, 타협설 사실일까=일각에서는 이번 이사회 결정을 놓고 정치권 개입설과 타협설 등 다양한 억측이 제기됐다. 명확한 결론이 나오거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탓이다. 당장 이사장-총장 합의안만 봐도 양측 주장이 다르고, 교수협의회도 달리 해석했다. 이사회가 이번 계약해지안을 결정하기에는 지난 1주일간 지나치게 시끄러운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치권도 이사회 전날 나름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청와대 측도 여론 모니터링은 하고 있었을 것이고,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몰살할 수 있다`는 위기를 느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KAIST 사태의 해결 방법을 놓고 이쪽저쪽서 나름대로 물밑 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KAIST 어디로 가나=서 총장은 우선 갈등 봉합과 화합 분위기 조성, 학내문화 쇄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표면적으로는 교수협의회와 학부총학생회가 서 총장에 대한 퇴진의 날을 세워와 봉합이 쉬운 것은 아니다. 또 이들이 서 총장 의지에 순순히 따라갈 것이라고 보는 여론도 거의 없다. 이렇게 보면, 당분간 KAIST는 갈등 양상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엉거주춤한 포즈의 경영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KAIST 이사회는 이사회 이후 관련 사안 해결을 위한 행보에 착수했다. 서 총장이 이사장에게 전권을 위임함에 따라 KAIST 정상화와 발전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이사회 내에 소위원회를 구성·운영할 계획이다. 소위원회는 이사 4~5인으로 구성하며 앞으로 약 1~2개월간 운영된다.
대전=박희범·윤대원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