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국제유가 폭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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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배럴당 130달러를 위협하던 국제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란 핵협상 재개로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된 데 이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등 유로존 경제위기가 확산되면서 국제유가는 5월 이후 한 달여 만에 20달러 넘게 급락세를 보인 것이다.

이쯤 되면 2008년 금융위기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당시 상황을 연상할 만하다. 2008년 국제유가는 7월에 14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하다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그해 12월에 30달러대까지 폭락하는 최대의 변동성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석유시장과 이를 둘러싼 세계 경제 및 지정학적 여건은 2008년과 얼핏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많다.

최근 유로존 경제위기는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이 구제금융 수혈국가가 되는 등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리스는 2차 총선에서 신민당과 사회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하면서 유로존 이탈 우려가 해소됐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것에 불과하다. 2008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세계 경제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석유수요가 단기간에 붕괴했다. 즉, 상반기에 하루 80만 배럴 증가하던 석유수요가 하반기에는 하루 190만 배럴 감소했다. 이와는 달리 최근 유로존 등 세계 경제상황은 금융위기로 이미 한 차례 구조조정을 겪은 만큼 급격한 침체보다는 점진적인 경기둔화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올 하반기 세계 석유수요도 2008년과 같은 붕괴보다는 점진적인 감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공급 측면에서는 2008년에도 이란 핵문제와 나이지리아 정정불안 등 위험요인이 있었다. 특히 이란 핵개발 문제로 이스라엘이 이란 내 핵시설 폭격을 언급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로 맞서는 등 올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원유공급이 일부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공급차질 물량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미국과 EU가 이란 원유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쪽으로 제재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도·터키 등의 이란산 원유수입에 예외조항을 적용했지만 EU가 유럽 보험사들의 이란산 원유운송 선박에 대한 보험 및 재보험을 금지함에 따라 하반기 이란 원유수출은 대부분 중단될 위기에 있다.

또 지난 14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주요 산유국은 적정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로 인식하고 있다.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원유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산유국의 특성상 유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균형재정을 고려한 국제유가 수준이 대략 80달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하반기 국제유가가 80달러대로 떨어지면 OPEC은 생산량을 줄여 적극적으로 유가 부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계 석유수급 상황과 OPEC의 재정소요가 2008년과는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반기에 유가가 폭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에서 바닥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가 다소 진정세를 보일 때 에너지효율 투자와 절약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항상 불안한 국제유가와 석유수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우리의 에너지 체질 강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40% 이하로 떨어진 우리의 석유소비 비중을 지속적으로 낮추기 위한 국민적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김진우 에너지경제연구원장 kimj@kee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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