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싱가포르,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국가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의료비 지출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3~4%에 불과하지만,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10%를 훌쩍 넘어섰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무려 7.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평균 1인당 국민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4%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34개 중 슬로바키아 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로 의료비 지출 속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인구 고령화로 새롭게 뜨는 산업이 생기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 경제를 회춘케 할 수 있다. 바이오헬스케어가 바로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될 유력한 산업이다.
2010년 기준 세계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456억달러다. 향후 5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 4.8%를 기록해 2015년에는 3109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별로 북미 48.6%, 서유럽 27.6%, 아시아 17.5%, 남미 2.0%, 중동·아프리카 2.7%, 동유럽 1.6%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북미와 EU가 세계 시장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품목별로는 전자의료기기 45.2%, 재활보조기 22.3%, 의료용품 23.5%, 치료기기 4.5%, 의료용 설비 2.0%, 기타 2.6%로 조사됐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의료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의료기기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요인이다.
2010년 우리나라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3조9000억원이며, 수출 금액은 1조7000억원이다. 초음파 영상 진단기·시력 보정용 안경 렌즈·의료용 프로브·혈당 측정 검사기 등이 주요 수출 품목이다.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등 고가 의료기기 시장 진입은 미흡한 실정이다.
국내 의료기기 회사는 1700여개에 달하는데, 이 중 100억원 이상 연매출을 기록한 회사는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중저가 제품을 취급하는 영세 기업 위주로 산업이 형성돼 있다.
의료용 레이저 장비를 제조하는 루트로닉의 황해령 사장은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이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 R&D 등으로 역량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허리를 담당할 수 있는 기업이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의료기기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영세 기업 중심의 시장이 바뀌고 있다.
삼성그룹은 5대 신수종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까지 제약·바이오 사업 부문에 2조1000억원, 의료기기 사업 부문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020년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1조8000억원, 의료기기 사업에서 10조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의료기기 사업을 담당할 삼성메디슨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담당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출범한 배경이다. 삼성그룹은 △해외 병원 건립 △의료 전산시스템 구축 △의료진 교육 △의료 장비 구매 등을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해외 병원 패키지 수출사업을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 상사 부문은 해외 병원 패키지 수출 프로젝트 수주·자금조달·의료 장비 구매 등을 총괄하고, 건설 부문은 병원 건립을 담당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일부 의료 장비를 생산하고, 삼성SDS는 의료 관련 전산 시스템 구축을 맡았다. 삼성서울병원은 현지 의료진 교육을 전담키로 했다.
SK그룹도 바이오헬스케어 사업 강화를 목적으로 신약 사업을 담당할 SK바이오팜을 분사했다. SK텔레콤은 u헬스케어를 담당할 헬스케어 사업 부문을 신설했다. SK건설은 연세의료원과 디지털병원 수출 협약을 맺었고, SK텔레콤은 서울대병원과 헬스케어 합작회사 설립 계약을 맺고 디지털병원 수출, 차세대 의료 서비스 모델 개발, 헬스케어 공동 연구개발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한화그룹·LG그룹 등도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서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시장 진출로 향후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내 인수합병(M&A)·전략적 제휴·자본 투자 등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도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식경제부는 국내 기업의 선진국 시장 진출과 신흥국 시장 선점을 목표로 바이오헬스케어 수출 산업화 촉진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글로벌 진출 전략뿐 아니라 △바이오시밀러 산업화 및 범부처 전주기 신약 개발 △u헬스케어 산업화 촉진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바이오 전문인력 양성 추진 △바이오 화학 실용화 센터 건립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대구와 오송에 첨단 의료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이오기술(BT) 성장동력 창출 및 고가 의약품 및 의료기기 수입 대체를 위한 정부 정책 지원은 향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김학도 지경부 신산업정책관은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이어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면서 “민·관·연뿐 아니라 수요자인 병원까지 협력해 우리나라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수준을 높이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