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누구나 송신자와 수신자가 될 수 있는 양방향 미디어다. 양방향성, 중립성, 개방성은 인터넷을 무한한 소통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히려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정부도 기업도 소통을 강조하면서 소통의 부재를 모든 갈등의 근원으로 지적한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양방향 소통수단을 갖고 있는 지금 우리의 화두는 역설적이게도 소통의 부재다.
소통의 부재를 안타까워하고 소통을 갈망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많은 갈등은 표현의 법적 제재와 관련된다. 명예훼손과 모욕의 법조항은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정보의 내용 규제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더 유감스러운 점은 타인의 표현 법적 제재가 소통을 강조하던 명망가나 정부, 심지어는 기업에 의해 자주 시도된다는 점이다. 거북한 표현의 법적 제재는 당연한 조치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사이버공간의 소통은 대게 깔끔하지 않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개중에는 거짓말쟁이도 있고 악의는 없지만 부주의한 사람도 있다. 사실과 의견을 정확히 나눠 소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논리와 정서를 구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은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거친 날 것의 표현이 가감 없이 올라오고 무한정 전파되고 영구히 지속되기 때문에 깔끔하지 않고 파괴력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깔끔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 우리가 꿈꿔왔던 투명성, 다양성, 자율성으로 뒷받침되는 민주적인 사회, 통통 튀는 아이디어의 교감을 통한 혁신은 깔끔하고 정리된 소통보다 깔끔하지 않으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얻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성숙된 민주성과 혁신은 효율적인 프로세스와 경험으로 뒷받침되면 성숙한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누구나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별다른 저항이나 갈등 없이 상호보완을 통해 최선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위키피디아를 보라.
필요한 것은 깔끔하지 않은 소통을 억지로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록 깔끔하지 않지만 민주성과 혁신성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세스와 경험을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열려있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들이 해줘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한계 주장이 아니라 인내심 있게 듣겠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다. 평범한 이들의 몇 번의 공격으로 무너질 명예라면 지위에 걸맞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섣부른 반격으로 야기될 다양성의 위축과 혁신성의 상실을 막는 것이 남들보다 더 고귀한 명망을 가진 사람들의 책임이다.
인터넷의 양방향성, 중립성, 개방성은 기술적인 설계의 특성일 뿐이다.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지는 순전히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인터넷은 민주성과 혁신이 넘치는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고 깔끔하지만 기대할 것 없는 무기력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이 탄생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윤종수 서울지법 부장판사(iwillbe9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