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취재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 택시를 타고 함께 이동하던 현지 기업 마케팅매니저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휴대폰으로 위치정보를 확인한 매니저가 기사에게 방향을 알려줬다.
“와, `아이폰`이다.” 나는 당시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아이폰을 촌놈이 서울 구경하듯 신기하게 쳐다봤다. `꾸욱` 눌러 쓰는 감압식에 익숙했던 내게 스치는 것만으로 화면이 움직이는 정전식 스마트폰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길 안내 앱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해외 출장을 가서 현지 정보통신기술(ICT)에 놀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인터넷을 연결하면 느린 속도에 답답해하며 우리나라가 초고속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숙소에서 소니가 아닌 삼성·LG TV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순진하게도 그때는 하드웨어와 인터넷 인프라가 모든 경쟁력을 담보한다고 믿었다. 헛다리 짚긴 우리 기업과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에 스마트시대 주도권을 고스란히 내주고 힘겨운 추격전을 벌여야 했다.
2012년 5월, 모바일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올랜도를 찾았다. 별다른 감흥은 없다. 3년 전처럼 뭔가를 신기하게 쳐다볼 일은 없다.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이 넘쳐나지만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산 TV가 호텔 점유율을 높여나간 것처럼 이제는 미국에서도 삼성 스마트폰을 아이폰만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ICT 코리아`의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초고속인터넷 강국 시절 다음 세상을 준비하지 못한 것처럼 또 다른 파도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정부, 기업 모두 빠른 추격자 전략에 성공했다고 안주하지 말고 혁신 강도를 높여야 할 때다.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이호준 통신방송산업부 차장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