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민간주도 녹색벤처 생태계를 만들자

2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17차 녹색성장위원회 및 제8차 이행점검 결과보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녹색금융이었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녹색산업 성장가능성에 비추어 민간 자금지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단하고 여러 가지 보완대책을 내놓았다.

녹색금융 전담조직 신설, 녹색융자·보증규모 확대, 신재생에너지 상생보증펀드 지원 확대, 녹색기술제품 확인제도 도입 및 녹색전문기업 요건 완화, 녹색전문기업 등 인증보유기업 우대, 녹색금융 통계 정비 및 녹색금융정보 환경 개선 등 보완책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녹색금융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을 지원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더 할 나위 없겠다. 정부는 2009년 7월 녹색금융·재정지원 정책을 마련한 이래 녹색기업에 16조9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지원했고 17조5000억원의 보증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녹색금융 정책 혜택을 봤다는 기업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적다. 오히려 보증기금에서 받은 보증서를 들고 은행을 찾아도 막상 창구에선 담보를 요구해 힘없이 돌아섰다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이야기는 종종 듣는다. 정부가 인정한 녹색인증이나 녹색전문기업 확인서도 금융권 대출창구에선 환영받기 힘든 실정이다. 주식 투자로 돈 번 이야기보다 깡통 찬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것처럼 수혜를 입은 사람은 입을 다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정부가 지난 3년간 풀었다는 16조9000억원의 정책자금이 어떤 기업에 지원됐고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정부는 녹색성장으로 제2 벤처 붐을 꾀했다. 그 중심에 녹색금융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만족할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부가 보완책을 다시 내놓기까지 투입한 노력과 관심에는 박수를 치지만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다.

벤처 활성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게 있다. 미국식 벤처 생태계 시스템이다. 미국은 벤처캐피털(투자자)이 기술을 평가하고 투자한다. 투자자는 벤처기업가에게 사업 성공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자기 책임으로 돌린다. 그 대신 기업을 청산하거나 인수합병(M&A)할 권한을 갖는다. 벤처기업가가 모든 책임을 지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한국에선 벤처를 운영하다가 한 번 망하면 재기하지 못하지만 미국에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오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 시스템이 작동하게 됐다.

미국식 시스템을 한국에 바로 도입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여유를 갖고 투자자가 시장 경제 논리에 따라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한국형 녹색벤처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민간부문이 앞장서서 투자를 주도할 것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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