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수 앞바다에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의 진원지는 12일 `바다`를 주제로 열리는 여수세계박람회장 한가운데 설치된 스카이타워. 폐사일로(버려진 시멘트저장고)를 재활용해 만든 이 건물은 박람회장에서 가장 높은(67m) 구조물이다. 향후 영구시설로 보존될 스카이타워에는 하프 모양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다. 뱃고동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의 이름은 복스 마리스(Vox Maris). `바다의 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다. 과거 중요한 행사의 시작을 알릴 때 북이나 나팔을 불었던 것처럼 해양엑스포는 복스 마리스가 내는 바닷소리를 시작으로 출발한다.
80음계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복스 마리스는 반경 6㎞까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이다. 기네스북 인증도 받았다. 파이프오르간의 깊고 웅장함과 팬플루트의 높고 청아한 소리를 허스키한 뱃고동 음색으로 표현했다. 뱃고동 소리를 디지털 샘플링한 뒤 연주 가능한 음역대로 조율한 결과다. 복스 마리스는 가벼운 여름의 미풍부터 포효하는 바다의 폭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를 낸다. 연주대에 있는 터치스크린으로 볼륨과 건반의 강약 조절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은 관람객이 원격으로 오르간을 직접 연주할 수도 있다. 전통 오르간 제작기술과 첨단 정보기술(IT)을 융합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악기를 만든 것이다.
19세기 중반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출발한 엑스포는 선진국 도시를 순회하며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인류가 성취한 문명의 업적과 결과물을 자랑하는 성대한 축제다. 전화기·자동차·비행기·텔레비전 등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발명품 상당수가 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였다. 유럽 어느 귀족의 집에서 출발한 조그만 이벤트가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 행사로 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은 모바일과 네트워크 시대다.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굳이 한자리에 모일 필요가 없다. TV와 인터넷만 있어도 안방에 앉아 제품이나 기술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새로운 발명품 하나를 구경하려고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에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19·20세기 방식이다.
21세기 엑스포는 더 이상 인간이 만든 기술이나 문물을 구경하는 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은 인류 역사를 바꿀 새롭고 신기한 제품을 기대하며 엑스포장을 찾지 않는다. 엑스포 전시관에서 기술은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인간의 삶과 자연, 그리고 문화를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기업도 미래 인류 문명의 모습과 꿈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꾸미는 데 수백억원씩 쏟아붓는다.
2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엑스포장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고 기억에 남는 전시품은 첨단 기술로 무장한 물건이 아니다. 관람객은 디지털 영상기술을 접목해 천 년 전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에 열광했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속의 고색창연한 진시황 병마용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한글 문양으로 디자인한 한국관에서도 한류 스타들이 출연한 동영상과 비보이, 민속국악, 북춤 등 전통공연이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였다.
여수 해양엑스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해양 인류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바다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박람회장 개·폐장 시간에 맞춰 스카이타워 파이프오르간이 더 넓은 바다를 보며 뱃고동을 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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