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대 교포 출신 대거 발탁.
세계 3위 반도체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공석이었던 TI코리아 사장에 파격적인 인사를 지난달 단행했다. 한국법인을 설립한 1988년 이래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데다 43살의 젊은 CEO를 선임한 것이다. 켄트 전 TI코리아 사장은 역대 사장 중 최연소다.
TI 뿐만이 아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법인 대표로 해외에서 활동 중인 40대 인물들을 낙점했다. 글로벌 반도체 한국 지사장의 세대교체가 시작된 셈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개척하는 시절에 한국에서 영업 관록이 붙은 이들을 주로 지사장으로 선임해 왔다.
하지만 한국 법인의 규모도 커지고 시장이 안정화되면서 CEO를 선임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신임 CEO를 선임할 때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잘되고 해당 기업문화를 가장 잘 전파할 수 있는 인물들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비교적 젊은 CEO를 통해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에서 지금과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를 기대하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보니 1.5세대 교포나 해외경험이 많은 인물들을 잇따라 발탁한다. 1.5세대 교포들은 부모님과 함께 1970~1980년대 이민간 세대로 허드렛일을 주로 했던 이민 1세대와 달리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고 해당국 주류 인사로 성장했다는 특징이 있다.
전 TI코리아 사장은 워싱턴주립대학교에서 아날로그 회로 설계를 전공한 동포다.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중학생 때 일이다. TI에 합류하기 전에는 온세미컨덕터·인터실 등에서 아시아 세일즈를 맡았다.
최근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권태영 AMD코리아 대표는 1966년생이다. 미국 PC 제조사 델에서 영업 이사를 지냈던 인물이다. 삼성과의 글로벌비즈니스 협력이 한국 내 AMD 사업의 핵심으로 재편되면서 삼성글로벌어카운트팀 지사장과 AMD코리아 대표까지 겸임하게 됐다. 실적 향상으로 본사 부사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지난해 아나로그디바이스코리아 대표로 선임된 한병무 사장은 아시아태평양지역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인물이다. 올해 47세인 그는 아나로그디바이스 합류 전 매슨테크놀로지 아태지역 부사장을 역임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반도체 장비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 본사 임원을 지냈다.
퀄컴 또한 파격적인 인사로 업계의 화제가 됐다. 퀄컴CDMA테크놀로지(QCT)코리아 사장을 역임하던 도진명 사장이 지난해 5월부터 QCT 세계 세일즈 총괄대표 및 아시아 사장까지 맡았다. 8월에는 퀄컴코리아 사장까지 겸직했다. 이와 함께 퀄컴코리아 부사장에는 이태원 한국 R&D 소장을 임명했다. 그는 연구소와 퀄컴코리아 운영을 총괄한다. 1969년생인 그는 독일 베를린 공대에서 전자공학 박사를 취득한 후 오디오 기술 벤처인 소프트맥스를 창업했다. 퀄컴이 2007년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퀄컴에 합류한 인물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본사의 문화 코드를 맞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며 “최근 선임되는 대부분의 지사장 자리에는 교포나 해외에서 활동해 영어에 능한 사람들이 물망에 오른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