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가 사실상 독점한 휴대폰 유통 시장이 무한 경쟁 시대로 넘어간다. 팬택이 종합 마케팅 자회사를 만들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이어 자체 유통 사업을 강화하면서 차세대 모바일 유통 권력 투쟁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사의 도전에 통신사의 응전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가전유통 전문점이나 대형 할인마트도 복병이다.
업계는 방송통신위원회가 5월 시행하기로 한 블랙리스트 제도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뇌관`이 될 것으로 본다. 통신사의 기득권 제한 폭에 따라 제조사와 일반 유통점 위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통점 규모의 경쟁=휴대폰 빅3가 일제히 유통시장에 포문을 열면서 당장 통신사 우산 아래 있던 대리점과 판매점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제조사 유통점은 대형 체험 문화공간, 하드웨어 애프터서비스(AS)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차별화를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삼성 모바일숍`이나 팬택의 `라츠`는 넓은 체험공간과 세련된 인테리어 장식으로 꾸며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은다. 서비스와 집객효과에서 밀린 소규모 대리점과 판매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도 자체 대형 체험매장 확보하며 이에 맞선다. SK텔레콤은 체험형 프리미엄 매장을 전국 300여개로 확대했다. KT는 체험과 AS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대형 매장 `올레애비뉴`를 올 상반기까지 50여곳으로 늘릴 방침이다. 지금까지 대리점과 판매점을 수족처럼 부리며 가입자 유치전을 펼친 통신사로서는 제조사, 유통전문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제조사 판도도 영향권=제조사 직접 유통 강화로 자체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HTC·모토로라·노키아 등 해외 브랜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통망을 확보한 한국 기업이 통신사 유통채널뿐만 아니라 자체 유통점을 거쳐 여러 경로로 고객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비해 해외 브랜드는 통신사 `셀 인(sell-in)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팬택이 거금을 투입해 리스크가 있는 유통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고객접점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체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해외 제조사는 하이마트·이마트 등 유통전문점이나 MVNO 등과 제휴를 적극 모색할 전망이다.
◇한국형 블랙리스트 `뇌관`=휴대폰 유통구조 대개편은 5월로 예정된 블랙리스트 제도에 맞춰졌다. 블랙리스트는 통신사에 전화단말기 식별번호(IMEI)가 등록되지 않은 휴대폰도 도난·분실폰이 아니면 통신사가 개통해줘야 하는 것이 골자다. 제조사나 일반 유통점이 휴대폰을 자유롭게 팔 근거가 된다.
블랙리스트 제도는 세부 정책에 따라 그 실효성이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관건은 통신사의 요금제다. 통신사가 지금의 관행처럼 자체 유통망을 통해 개통한 휴대폰에만 요금제 할인과 보조금을 지급하면, 가격 경쟁력이 없는 제조사 유통망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유통 경쟁을 바탕으로 단말기 가격인하를 이끌겠다는 방통위 취지도 무색해진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 때문에 “제도가 시행되면 중고 단말기나 이통사 외 유통망에서 구입한 단말기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요금제 출시를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통위가 5월 블랙리스트 제도 시행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을 일단 제외하기로 한 것도 변수다. 프리미엄폰이 없는 제조사나 유통점이 저가 보급형 전문 유통점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