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은 엘피다의 법정 관리 신청을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엘피다 재기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회복 가능성은 낮게 평가했다. 일본 정부와 업계는 오히려 LCD 산업으로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예고된 파산, 출구가 없다=지난 15일 일본 채권 시장에서 엘피다 회사채는 하루 전보다 12% 급락했다. 14일 엘피다는 분기 결산 보고서에서 `기업 지속과 관련한 중요한 불확실성`이란 내용을 언급했다. 채무 상환 불가능 가능성 때문이다.
D램 가격 하락과 엔고라는 직격탄을 맞은 엘피다는 지난해 상반기(2011년 4월~2011년 9월)에만 8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엘피다가 4월 초까지 갚아야 할 부채는 2조원이 넘는다.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 및 대만 난야와 3각 편대를 이뤄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지만 교섭이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엘피다는 일단 재기의 의지를 밝혔다. 27일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 사장은 “회사갱생법에 따라 사업 재편을 단행하겠다”며 “법정 관리 이후에도 사업은 그대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칼자루를 쥔 일본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에다노 유키오 경제산업상은 “경제에 악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협력업체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현재로선 산업활력재생법 기준을 바꿀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엘피다는 내달 28일 상장 폐지될 것으로 전해졌다.
◇D램 이어 LCD도 위험하다=일본 현지 전문가들은 엘피다 법정 관리가 자칫 LCD 업계로 확산될 지 우려하고 있다. 중소형 LCD업체 3곳이 합친 재팬디스플레이가 엘피다 탄생(NEC, 히타치 합병)과 같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업계가 이합집산한 뒤 정부 자금을 받은 형태다.
오시마 가즈타카 라쿠텐투신투자 사장은 “LCD는 D램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투자와 가격 경쟁이 치열하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일본 제품이 품질이 뛰어나다는 주장은 이제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팬디스플레이는 저온폴리실리콘 LCD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방침이다. 20나노 미세 공정으로 위기를 탈출하겠다는 엘피다의 청사진과 다르지 않다. 다만 중소형 LCD 시장이 성장세라는 점이 긍정적이지만 한국과의 치열한 승부는 불가피하다.
◇국내 기업, 큰 수혜 기대=엘피다는 지난 2009년 일본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1400억엔 규모 지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자금 수혈에도 미세공정 전환에서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에 밀린 데다가 엔고 등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채 시장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미 기력을 잃어 정부가 영양제를 주입한다해도 회생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상화 계획을 제출하고 정부 승인을 받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당분간 투자도 중단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엘피다의 추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럴경우 국내 기업들이 큰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 3개사 체제로 재편될 경우 더 이상 치킨게임은 재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