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똑똑하고 착한 악마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자.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한 무슨 말을 하면 참석한 각료는 물론 전문가들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그 말에 `토`를 달기 어렵다. 회의 에 앞서 많은 준비했을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대통령 결정이 맞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아무리 말해 봤자 대통령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절대 권력자 앞에서 어쭙잖게 토를 달았다가 `뼈도 못 추릴 수 있다`는 인간적 고뇌도 참석자 입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러다 보면,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토론은 사라지고 일방적 훈시와 설교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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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밤새 게임하다가 나와서 현실과 착각하고 옆에 사람 찌르는 일도 있지 않나, 게임 산업이 폭력적인 게임만 만들지 말고 유익한 것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등 최근 사회병폐의 주범(主犯)으로 게임을 지목한 것이다. 또 지난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경주 최 부자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떡볶이, 순대까지 재벌 2·3세가 손대서야 되겠느냐”며 대기업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기업 회장 자녀들이 취미로 빵집을 경영하면서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서민 일자리를 걱정하고 건전한 게임 산업 발전을 바라는 대통령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게임 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룹 회장 자녀들의 빵 사업 철수 역시 우리사회가 겪는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있는 본질적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희생양을 앞세워 문제 해결의 본질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본질적 요소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책 엘리트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강력한 리더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모일 경우, 반대의견을 무시한 채 논의는 점차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이런 과정을 두고, 어빙 재니스 예일대 교수는 `집단사고(Group Think)` 이론을 창안해냈다. 한마디로 똑똑한 다수가 모여 멍청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현상이다.

가장 유명한 집단사고 사례는 미국의 쿠바 침공 사건이다. 케네디 대통령 집권 초기인 1961년 미국은 쿠바 피그만을 침공했다. 이 작전은 완전히 실패해 3000여명 병력 대부분이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체포됐다. 당시 침공 지점에는 넓은 늪지가 있어 침투가 전혀 불가능했지만, 미국은 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엉성한 작전을 펼쳤다. 미국 최고 전략가들이 벌인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참패였다. 당시 안보보좌관이던 슐레진저는 공습작전에 여러 문제점이 눈에 띄었지만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주변 각료 중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한 미움을 사기 싫어 자기도 조용히 침묵했다는 얘기다. 1972년 닉슨의 워터게이트, 1984년 미국 NASA 챌린저호 폭발사건 등도 집단사고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집단사고를 막으려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생각이던 자유롭게 말하며 난상토론을 벌이는 브레인스토밍에서도 이런 역할이 중요하다. 바로 `데블스 에드버킷(Devil`s advocate)`이다. 데블스 에드버킷은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톨릭 성인(sainthood) 추대 심사에서 추천 후보의 불가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을 `악마(Devil)`라고 부른 데서 따온 개념이다. 학교 폭력과 경제 양극화 등 사회적 병폐를 본질적으로 막으려면, 대통령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있는 똑똑하고 착한 악마가 필요하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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