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SK그룹에 축하의 말을 건넨다. 여러 우여곡절을 넘어 최종적으로 하이닉스를 인수한데 대해서다. 그만큼 하이닉스는 매력적인 기업이다. 하이닉스 임직원에게는 존경심을 느낀다. 한때 적지 않은 전문가와 정부마저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 기업을 세계 2위의 메모리 기업으로 지켜온 열정과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하이닉스 대표이사를 맡는 책임경영의지도 긍정적이다.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졌고 대외신뢰도 상승, 인재영입 확대 등 파급효과도 기대된다.
덕담을 더하고 싶지만 여기까지다. 잔칫집에 초치는 것 같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탓이다. SKT가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지난해 7월 이후 하이닉스의 경영은 더 보수적으로 변모했다. 채권단과 하이닉스 경영진은 11년만에 찾아온 매각호기를 놓칠 순 없었다. 정상적인 경영보다는 매각작업이 최우선 시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SKT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에는 하이닉스는 채권단과 SKT 두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매달 경영계획을 재수립하고 투자계획을 수정하는 데 반해 하이닉스는 매각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다행히 미세공정 전환은 예상치를 상회했다. 하이닉스 메모리 사업은 기반이 탄탄하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경영진이 있기 때문에 6개월의 혼돈은 곧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
SK가 하이닉스의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시스템반도체 사업이나 파운드리사업 모두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사업이다. 그런데 둘 다 만만하지 않다. 파운드리 분야는 세계적으로 TSMC, UMC 2개사 정도만 흑자를 기록 중이다. TSMC는 점유율이 50%에 이르는 이 분야 절대강자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기치로 2000년에 설립한 SMIC는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2010년 잠깐 흑자를 냈을 뿐 대규모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2위인 글로벌파운드리 역시 중동의 거대 자금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자다. 해외로 눈돌릴 필요도 없이 동부그룹이 설립한 동부하이텍 역시 사업 이래 11년간 한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녹녹지 않다. 지난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10조원이 넘는 매출과 두자릿수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20년 넘게 시행오차를 겪고 사업포기 유혹을 견뎌가며 꾸준히 뿌린 씨앗이 오늘의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사업을 만들었다. 내로라하는 수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매일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는 곳이 시스템반도체산업이다.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분명 국내 반도체 산업에는 축복이다. 축복을 결실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실력, 철저한 계획이 우선이다. 반도체 산업은 한가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유형준 부품산업부장 hjy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