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었을까. 여당 대표인 박근혜 의원은 전자공학도 출신이고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안철수 교수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출신이다. 유력 대권후보 1, 2위를 넘나드는 인사들이 모두 ICT인인 셈이다.
차기 정부에서 ICT와 과학기술이 현재와는 다른 위상을 차지할 것이라 예상하는 근거다. 적어도 정치적인 이유로 부처 개편을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이거나 70, 80년대식 토목건설에 올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유력 주자 모두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여당 캠프에 참가하는 인사들이나 주변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이들 두 유력후보의 ICT와 과학기술관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는 현 정권과는 다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벌써부터 부처 개편 논의가 깊숙이 진전되고 있다. 한 마디로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이다.
관가가 부산하다. 행안부, 지경부, 문화부, 교과부, 방통위 등은 물론 기재부와 금감원까지 가세하고 있는 양상이다. 정권 교체기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등 협·단체, 정부산하기관도 나서고 있다.
정가도 마찬가지다.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박근혜 의원은 아예 집권하면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부활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고 야당은 정보미디어부 신설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군소 정당들도 ICT 및 과학기술부 거버넌스 검토를 공약했다.
분위기는 좋다. 산업계·학계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던 현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동반성장이란 키워드도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 상황이다.
ICT가 고용을 갉아먹는다던 데서 벗어나 고용을 확대하고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격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 국가정책의 중심이 ICT와 과학기술이어야 한다는 여론도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처 개편이 부처 이기주의 형태로 흘러가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 내 대부분의 개편안이 기득권을 전제로 하고 있고 일부는 주고 받기식이라는 힐난도 쏟아지고 있다.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각 부처는 자부처 중심의 논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 부처가 다른 부처와 경쟁하면서 타부터에 비해 지도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1960년대 중국 공산당의 백가쟁명식 논리와 흡사하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논리가 기득권적 이해타산에 밀리고 있다. 국가 조직의 효율성을 논하자는 것이 정파성과 부처이기주의에 매몰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 부처 개편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다시 슬금슬금 끼어들고 있다. 타산지석식 논의는 환영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의 이름으로 더 이상 국정을 논하기엔 현 정부의 실책이 너무 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처 개편의 논의가 국가 조직의 효율성과 국가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정부조직은 미래 먹을거리 산업의 바로미터다. 어설픈 신자유주의자들의 시장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정치집단의 전략에 휘둘려서도 안 되고 이해집단의 몽니에 휩쓸려서도 안 된다.
ICT·과학기술을 근간으로 산업 전부문의 혁신과 창의성을 자극하고 비즈니스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농업도 ICT가 좌우하고 조선도 과학기술이 좌우한다. ICT·과학기술이 제조업의 생산성과 사회 서비스도 좌우한다. 고용과 복지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ICT·과학기술이 부처 거버넌스의 중심에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이기주의는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 1호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