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15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약 50만명이 마녀 사냥으로 희생됐다고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비과학적 행동이지만 당시 마녀를 가리기 위해 `물 시험`이란 방법을 썼다.
과정은 간단하다. 마녀로 의심되는 사람을 단단히 묶어 물에 빠뜨린다. 물은 깨끗한 물질이라 마녀일 경우, 튕겨져 나온다고 믿었다. 마녀가 아니라면 그대로 가라앉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죽음이다. 만에 하나 튕겨져 나오면 화형이다. 가라앉으면 당연히 익사다.
일그러진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했으니 마녀 사냥에 합리성이나 공정성 따윈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다. 3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비슷한 마녀 사냥이 재현됐다. 바로 `게임 규제`다.
학교 폭력과 왕따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게임이 지목되자 일부 언론은 게임의 폐해를 지적하는 기획 기사를 쏟아냈다. 선혈이 낭자한 게임이 청소년에게 노출되고 아이템 거래로 거액이 오가는 현장을 고발했다. 게임에 마녀의 낙인을 찍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아쉽지만 이 기사는 올바르지 않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성도가 떨어진다.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게임을 청소년에게 유통하는 장본인은 불법 웹하드와 P2P 서비스다. 아이템 거래 역시 청소년 이용을 묵인하는 중개업자에게 책임이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청소년이 비디오방에서 성인영화를 보거나 불법복제 DVD를 만들어 판매하는 법적 책임을 모두 영화사가 져야 한다. 영화 산업에서 `워낭소리`도 `젖소 부인 바람났네`도 공존 하듯, 합법적 테두리 안에선 어떤 게임 콘텐츠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불행히도 이번 마녀 사냥이 중단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아이들이 왜 게임에 몰두하는지 대화로 풀기보다는 우선 차단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다수다. 이 부모에게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선거를 앞두고 침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게임 규제를 위해서라도 관점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게임을 콘텐츠가 아닌 마약으로 바라보면 마녀 사냥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이 마녀 사냥 역시 가까운 미래에 타산지석으로 회자될 날이 올 것이다.
국제부·장동준 차장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