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표준의 함정

한 외국기업 한국법인은 아이폰·갤럭시S·갤럭시탭·아이패드 등 최신 스마트기기를 업무에 적용하다가 포기했다. 표준 때문이다. 본사가 수년 전부터 블랙베리를 업무표준으로 삼고 있어서다. 한국법인도 이를 따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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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 최고정보책임자(CIO)는 “본사 표준정책으로 인해 최근 독자적으로 계획한 모바일 업무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쟁사에 뒤쳐지는 여건에 회사 경쟁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용 모바일 오피스 신화를 개척했던 블랙베리가 최근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니 지사 IT 담당자는 애간장이 탄다. 본사 표준 정책이 세계 각국 지사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기업의 강력한 표준정책은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표준 시스템의 덩치가 크다보니 급변하는 대외 환경을 즉각 반영할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표준을 관장하는 컨트롤타워가 계열사 IT 관계자보다 환경변화에 더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고 수준의 표준도 1년 후에는 구형이 된다. 낡은 표준은 회사 비즈니스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최근 삼성과 두산그룹은 특정 패키지를 기반으로 계열사 IT 및 보안 체계를 표준화하거나 일관된 전략을 적용하는 그룹 차원 컨트롤타워 체제로 전환했다. 롯데, 포스코, CJ 등 타 그룹도 마찬가지다. 업무 프로세스를 상향평준화해 마치 한 회사처럼 시너지를 내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다. 하지만 표준이 표준구실을 하려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국내 한 비제조업체는 그룹의 강력한 표준화 정책에 못 이겨 표준 패키지를 도입했지만 90% 이상을 뜯어 고쳐야 했다. 회사 관계자는 “표준 패키지 대부분이 제조산업에 최적화돼 있어 타 업종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며 “하지만 그룹 정책이니 다른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룹차원에서 모바일 업무 표준을 뒤늦게 마련하는 바람에 미리 개발한 모바일 업무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된 계열사도 있다.

최근 IT 키워드는 `표준`이다. 표준의 긍정적 효과는 분명 있다. 하지만 표준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환경변화를 수용하는 표준이어야 진정한 표준이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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