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쳇바퀴를 돌고 있다는 평가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비리 의혹 문제까지 터지면서 말 그대로 납작 엎드려 있는 형국이다. 차기 조직 개편 논의와 맞물려 벌써 정부 조직 가운데 리모델링 1순위로 떠올랐다.
‘방통위 추락’은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다. 위원장을 포함해 상임위원 대부분의 마인드가 방송에 편중된 상황에서 시장과 산업을 보는 정책이 나올 리 만무했다. 정치권도 가세한 상황에서 방송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정파싸움으로 비화됐다. 통신은 상대적으로 뒷전이었다. 실·국장급 등 관료 전문가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방송만 있고 통신이 없다’는 평가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조직 운영도 비효율적이다. 합의제 기구의 가장 큰 성공 전제는 독립성이지만 오히려 당파 눈치만 보는 어정쩡한 결정 기구로 전락했다. 결과적으로 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면서 상호 견제 기능을 상실해 크고 작은 부작용이 속출했다. 무엇보다 정통부 업무를 4개 부처로 쪼개면서 종합적으로 관할하는 조정 기능을 상실했다. IT 정책 기능이 뿔뿔이 나뉘면서 조직 효율성 면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기업의 불편만 가중시켰다.
그렇게 가시방석 위에서 방통위는 4년을 보냈다. 그리고 산적했던 문제가 집권 말기에 비리 의혹 문제 등과 맞물려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뒤집어 보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잘못된 단추를 제대로 맞추면 된다. 꾹 참고 1년을 기다리면 어떤 식으로든 해법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개운치 않다. 정부 조직만 바뀌면 지금까지 산적한 방통위의 문제가 모두 풀릴 수 있을까. 다소 책임 회피처럼 들린다.
조직 개편에 앞서 정작 중요한 필요조건이 따로 있다. 먼저 분명한 방송통신 정책 철학을 수립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방통위가 표류한 결정적 이유는 정책 비전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정통부 시절 ‘IT839’ 전략이 시장을 부풀리고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다른 부처와 갈등을 야기했지만 산업 발전의 정책 뿌리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집권 말기에 중장기 비전까지 힘들겠지만 통신시장을 지금 구도로 유지할지, 아니면 경쟁으로 더 자극을 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갈지 분명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방송에서도 지상파와 케이블(SO)의 위상 정립 여부, 경쟁 논리를 어디까지 적용할지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정책 철학을 먼저 세워야 명분이 생기고 세부 정책과 실행을 흔들리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강한 추진력이다. 국내 통신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TDX 교환기나 CDMA 기술 등은 모두 초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없는 시장을 만들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발에 그치지 않고 상용화에 더 큰 무게를 두고 끝까지 매달리는 ‘벼랑 끝 전략’으로 성공 모델을 만들었다.
‘와이브로’가 결과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도 기술 문제기보다는 실행 의지와 추진력이라고 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와이브로는 그동안 내내 기존 통신사 눈치만 보다 현재의 결과를 초래했다. 좋은 정책도 중요하지만 결국 실행과 추진력이 뒷받침돼야 정책은 시장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명 의식이다. 조직은 정권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몸담은 공무원은 다르다. 책임 있는 자리와 상응하는 권한을 주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방송통신정책을 이끌어간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방통위 변화는 외부 여건과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부에서 시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