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제외한 제조업 계열사 임원 인사는 사뭇 달라지고 있는 각사의 위상과 향후 그룹 차원에서 사업 재편 구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임원인사와 곧 이어질 조직개편에서 삼성LED는 삼성전자로 합병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는 친정격인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버금갈 정도로 위상을 키우면서 향후 그룹 내 디스플레이사업 열쇠를 쥘 것으로 전망된다. ‘성과주의’를 강조했지만 감사(경영진단)팀 출신 발탁도 눈에 띈다.
◇삼성LED 피합병 행보=이번 인사로 삼성LED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로 조만간 합쳐질 것이라던 전망은 기정사실화됐다.
승진자 7명 가운데 부사장 2명, 전무 2명 등 고위직 임원 4명 모두 삼성전자 반도체 전입 임원이다. 조남성 부사장과 오경석 부사장은 반도체사업부에서 마케팅과 연구개발을 주도해 온 핵심 임원이다. 상무로 승진한 나머지 3명 임원은 삼성LED 내부 승진 케이스지만, 이 중 김영선 상무 또한 삼성전자 반도체 출신이다. 삼성LED를 태동시킨 주역이었던 구자현 부사장은 승진해 삼성전기로 이동했다.
곧 단행될 조직개편에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가 삼성LED를 ‘사업부’ 형태로 흡수, 운영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법인 통합에는 법적 절차에 따라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사실상 수일 내 조직통합은 이뤄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김재권 현 삼성LED 사장이 다른 보직을 맡게 된다면 당분간 조 부사장이 대표대행을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삼성전자 LCD=한때 삼성전자와 연내 합병설이 나돌았던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이번 인사로 위상을 공고히했다. 현 김상수 부사장(CTO)을 포함하면, 신임 송백규·유의진·이동훈 부사장 등 총 4명의 부사장이 포진하게 됐다. 직전까지 부사장 직급은 김 부사장 단 한 명이었다. 이날 인사만 놓고 보면 부사장급 조직이 종전보다 네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모태인 삼성전자 LCD사업부와 비교하면 SMD의 달라진 지위를 실감할 수 있다.
이날 인사에서 매출액 규모 네 배 이상인 삼성전자 LCD사업부는 부사장 3명 조직에 불과하다. 향후 삼성그룹 디스플레이사업 중심이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계열사 가운데는 SMD가 열쇠를 행사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삼성전자 LCD와 SMD를 합치는 향후 사업 재편 과정에서도 SMD의 역할은 더욱 커지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기 위상 강화=그동안 부품 협력사 정도로 여겨졌던 삼성전기는 지난 사장단 인사에 이어 이번 임원 인사에서도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최치준 신임 사장이 역대 처음 내부 승진 발탁된데 이어 구자현·김창현·이효범·임우재 등 총 4명의 부사장 승진자를 배출했다. 부사장 승진 규모에서 역대 최대다. 고현일·유재경·이무열 등 3명의 전무와 강대륜 등 9명의 상무도 모두 내부 승진자다. 사장부터 상무급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많은 내부 승진을 기록한 것도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삼성전기를 바라보는 그룹의 시각이 그만큼 각별해졌다는 뜻이다.
◇신사업 무게 중심=삼성의 신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는 이번 인사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에너지기업을 표방한 삼성SDI, 첨단소재 계열사로 변신 중인 제일모직과 삼성코닝정밀소재가 대표적이다. 삼성SDI는 이번 인사에서 1명의 부사장과 전무 4명, 상무 7명 등 총 12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올해 저조했던 실적을 감안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승진 규모다.
특히 오요안 상무를 비롯해 순수 전지사업에서만 5명의 승진자를 기록해 에너지사업을 독려했다. 제일모직은 3명의 전무와 7명의 상무를 승진 발령했다. 전무 3명과 상무 4명은 제일모직의 주력 사업인 전자재료·케미칼 부문에서 탄생했다. 삼성코닝정밀소재도 기존 LCD 유리기판에 이어 차세대 태양광 소재사업에 더욱 힘을 싣기 위해 박원규 기술센터장을 부사장으로, 박수곤 신사업담당을 상무로 각각 승진 발령하는 등 신사업에 무게를 뒀다.
◇로열 패밀리 가운데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만 승진=이번 인사에서 이건희 회장 맏사위인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재용 사장,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에버랜드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둘째 사위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 등은 그대로 직급을 유지했다. 임 부사장은 43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머지 3세 가족에 비해 비교적 승진이 늦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삼성SDI, 제일모직, 삼성코닝정밀소재 등 상당수 계열사는 감사팀 출신 신규 임원을 배출함으로써 최근 삼성그룹 내 감사팀의 입김이 한층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