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노병은 죽지 않는다

 최근 일본 재계에서 주목받는 벤처가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조명 업체 ‘이엘테크노’다. 임직원 14명에 불과한 이엘테크노를 아사히신문이나 니혼게이자이 등의 권위지가 주요 기사로 다뤘다.

 이 회사는 기존 제품보다 생산비용을 90%나 줄인 획기적 OLED 조명을 개발했다. 비싼 OLED 재료 사용량을 10분의 1로 줄였고, 제조 시간은 60% 이상 단축했다. 밝기는 두 배 높고 가격은 낮춘 OLED 필름도 개발했다. 현재까지 나온 OLED 조명 중 가장 높은 품질과 가장 싼 가격을 실현한 셈이다.

 이엘테크노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단지 좋은 제품만이 아니다. 드라마같은 회사 설립 배경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버림 받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기술을 멋진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마메노 가즈노부 사장 등 이 회사를 만든 핵심 인력은 산요와 코닥의 합작법인 SK디스플레이의 출신 엔지니어들이다. SK디스플레이가 문을 닫으면서 실직,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각 자 제 살길을 찾아 나섰다. 마메노 사장 역시 미국과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를 전전했다.

 흩어져 있던 엔지니어들이 모인 계기는 일본 OLED 산업에 대한 애정이다. 마메노 사장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LCD와 달리 OLED는 기술력만 있으면 소자본으로도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뜻에 동참한 엔지니어들이 의기투합, 이엘테크노를 탄생시켰다.

 흔히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을 지는 해에 비유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엘테크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기술력은 무시할 수 없다. 엔고와 대지진 등 외부 요인으로 비틀거리지만 일본 첨단 제조업 저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마메노 사장은 인터뷰에서 “조금 더 성장해 옛 동료를 불러오면 회사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노장 엔지니어들의 노하우를 귀중하게 여기는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국제부·장동준 차장 dj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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