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도전의 30년사, 자원개발로 다시 쓴다]<1>우리나라 자원개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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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들어 광물가격이 폭등하고 남미를 중심으로 자원민족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자원 확보를 위한 국제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7%에 달한다. 금속광물자원 역시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세계 자원 수급 및 시장변동에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공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자원개발 투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해외 자원 확보는 한국경제 생존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해외자원개발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특성을 갖고 있다.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가진 메이저 기업도 탐사에 성공하는 비율은 최대 30%에 불과하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성을 갖고 추진돼야 한다. 이에 30년간 진행된 우리나라의 국내외 자원개발 추진현황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자원개발의 정책방향과 차별화된 한국형 협력모델 등 자원개발에 있어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제와 전략을 10회에 걸쳐 집중 조명해 본다.

 

 2011년 10월 20일 늦은 오후 한국가스공사 신규사업처 사무실. 박래현 탐사사업팀 차장을 비롯한 직원 10여명이 모였다. 지난 2007년 7월부터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한 모잠비크 Area4 탐사사업의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모든 참여사는 탐사결과를 온라인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에 모두들 박 차장의 모습을 숨죽여 응시하고 있었다. 박 차장은 떨리는 손끝으로 탐사결과(시추리포터)를 클릭했다.

 “와아~ 해냈어!” 그 순간을 숨죽여 지켜본 30여명의 직원들은 함성과 박수를 연발했다. 현장 탐사성공률이 최대 15%밖에 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할 때 시추리포터를 통해 나온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어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스가 발견된 탐사정은 아프리카 모잠비크 북부해상 Area4 광구의 4개 탐사정 가운데 첫 번째 탐사정으로 발견 잠재 자원량은 최소 15Tcf(약 3억4000만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스공사는 이번 가스전 발견으로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1년 치를 확보했다.

 ‘자원전쟁’ 시대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지 오래다.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면 자원전쟁이 될 것”이란 예측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977년 첫발을 내딛다=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자원개발은 1977년 한국전력공사가 25%의 지분으로 참여한 파라과이 샌안토니오 우라늄 탐사사업이다. 정부차원에서 해외 자원개발을 추진한 것은 이듬해인 1978년부터다. 1970년대 석유와 원자재 파동으로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경제의 성장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1978년 1월 동력자원부의 발족과 함께 에너지 및 광물자원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3월 대한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물자원공사)에 해외자원부가 신설됐고 12월에는 해외유전 및 광물자원개발에 대한 탐사·개발업무를 담당하는 석유공사가 설립됐다.

 기업들의 해외 자원개발 투자도 증가했다. 1981년 5월 코데코에너지가 수출입은행 지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석유개발 사업인 인도네시아 서마두라 해상 광구에 진출했다. 1985년 9월부터 생산을 시작해 25년이 넘은 현재까지 하루 1만9000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1984년 3월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을 주축으로 석유공사·삼환·현대가 참여한 예멘 마리브 유전개발 사업은 당시 가장 성공적인 사업 중 하나였다.

 서마두라·마리브 사업의 성공은 기업들로 하여금 자원개발 사업이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수익사업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고 많은 기업이 앞 다퉈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좌절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1980년 중반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탐사 사업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자 각 기업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탐사 외에 개발·생산을 확대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도입하고 미국·북해·서아프리카 등 참여지역 다각화도 추진했다.

 이에 정부는 자원개발 정책을 쏟아냈다. 1994년 해외자원개발 사업 허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고 개발자원의 국내 도입 의무조항을 삭제했다. 그 결과 석유개발 사업은 1995년부터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 말까지 3년간 10개 생산광구, 3개 개발광구, 28개 탐사광구 등 총 41개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대표적인 자원개발 사업이 리비아 엘리펀드·베트남 11-2광구다. 1997년 석유공사·SK·마주코통상·대성산업 등으로 구성된 한국 컨소시엄은 리비아 엘리펀드 광구에서 매장량 약 9억6000만배럴 규모의 대형 유전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고 2004년 4월부터 상업생산이 시작됐다. 베트남 11-2광구는 국제 입찰을 통해 우리나라 컨소시엄이 지분 100%를 확보(현재는 75%)하고 석유공사가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 일일 3만4000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이 사업은 광권 획득, 핵심설비 건설, 생산까지 전 과정을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수행한 첫 사업으로 우리나라 역량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1997년까지 크게 발전한 해외 자원개발사업은 외환위기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기업 구조조정과 부채비율 200% 제한으로 자원개발 사업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일부 유전은 매각됐다. 2002년까지 5년간 매각한 사업만 26개에 이른다. 1997년 4억5000만달러 수준이던 석유·가스개발 투자액은 1998년 2억9000만달러, 1999년에는 2억6000만달러로 감소했다.

 자원개발 사업이 침체되자 정부는 석유공사의 융자비율을 100% 상향조정했다. 이 시기에도 석유공사가 운영권자가 되고 SK와 공동으로 탐사를 시작한 베트남 15-1 광구가 탐사 약 3년 만인 2001년 8월 대규모 상업유전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지만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경부 관계자는 “1·2차 석유파동을 겪었음에도 자원은 전략적 상품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가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저유가시기에 투자를 확대했더라면 낮은 비용으로 우리의 에너지 공급 안정성과 부가가치 창출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개발, 인내심이 필요하다=2008년 이후 우리나라 해외 자원개발 투자는 양과 질에서 기존과 확연히 달라졌다. 사업 수는 2007년 286개에서 2010년 469개로 증가했다. 눈에 띄는 것은 개발·생산이 92개 순증했는데 탐사보다 더 많이 증가했다. 잠재력 있는 탐사 사업뿐만 아니라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개발·생산에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가스 개발의 경우 우리가 확보한 물량이 일일 1만배럴 이상인 프로젝트가 2007년에는 베트남 11-2·리비아 엘리펀트·베트남 15-1·페루 카미세 등 4개에 불과했으나 2010년 말에는 10개로 늘어났다. 희유금속 개발도 추진 중이다. 리튬·희토류를 신전략광물로 지정해 개발하고 있다. 2차 전지의 핵심원료인 리튬의 경우 칠레·아르헨티나에서 국내 수요의 6배를 확보했으며 희토류도 중국·남아공 등에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정부의 자원외교가 대폭 강화됐다는 점이다. 총 22개국에 우리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정부 차원의 협력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세계 3위 원유국인 이라크 지역에 한국가스공사가 진출하는 등 대규모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류상수 한국석유공사 카자흐스탄 현지 법인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이후 현 정부와의 협력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자원외교가 현지 진출 기업들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2007년 일일 생산량 5만배럴에서 내년 30만배럴 규모로 확대하는 대형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자원의 자주개발률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석유·가스의 경우 2007년 4.2%에서 2010년 10.8%로 상승했으며 전략광물은 18.5%에서 27%로 크게 증가했다.

 자원으로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처럼 그야말로 자원전쟁의 시기다. 높은 기술력과 경험, 강력한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메이저 기업과 뭉칫돈으로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자주개발률을 20%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하고 리스크 최소화와 탐사 사업의 성공률을 높여 나가야 한다.

 지경부 관계자는 “자원외교의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기 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방향성과 목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의 자원개발은 70년대 후반부터 실패와 성공에서 지불한 학습비용이라는 것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 해외자원개발 진행사업 현황 (단위:개)

자료: 산업자원백서·지식경제백서

 <표> 해외 자원개발투자현황(단위: 백만달러)

 ◆인터뷰/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

 “자원개발은 사업 특성상 탐사에 성공하더라도 개발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이르기까지 최소 5~6년이 소요됩니다. 무엇보다 실패를 용인하고 결과를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내년 원유 일일생산량 30만배럴, 2016년 50만배럴 달성을 위해 순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원개발을 할 때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점에 대해 “자원개발은 대규모의 자본, 고도의 기술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하이 라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라며 “국내 자원개발 기업의 양적성장과 기술력 등 질적 성장의 동시추구를 통한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지난 33년간 국내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국내외 석유개발에 매진해 왔다. 내년에는 일일 생산량 30만배럴, 매장량 20억배럴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 2008년 미국, 2009년 페루·캐나다·카자흐스탄, 2010년 영국, 올해 캐나다에서 대형 유전을 성공적으로 확보한 상태다.

 “2008년 5만7000배럴이던 일일 생산량은 지난해 21만7000배럴로 4배가량 늘어났습니다. 공사는 생산인프라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2016년 글로벌 50위권 석유기업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해외자원개발의 어려움에 대해 강 사장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싼 오일(Easy, Cheap Oil) 시대가 종료한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공사와 같은 소비국가 국영석유회사는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조급한 평가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지와 성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석유개발은 프론티어 지역 및 비전통석유 등 돈이 더 많이 들고 채굴장비가 필요한 ‘터프오일(Tough Oil)’로 개발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도 등 자원개발기업들의 자원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원통제도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강 사장은 “국가 간 석유자원 확보 경쟁에 적극 대응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자원개발 공기업의 몫”이라며 “해외사무소 및 지사 네트워크, 정부 자원외교 활용 등을 통해 유망한 사업기회와 자원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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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

 특별취재팀=김동석 부장(팀장) dskim@etnews.com 함봉균·유창선·박태준·조정형·최호·유선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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