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일 PCB 공동심포지엄이 경기도 안산에서 열렸다. PCB에 관한 여러 신기술 동향이 논의됐다.
일본 측 강연자는 “한중일이 세계 PCB 표준에 힘을 합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PCB 세계표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시장 표준이나 다름없는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을 주도하고 있다.
‘사실상 표준’은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정한 공식 표준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실세’ 표준이다. 미국은 1957년 IPC라는 표준단체를 설립한 이후 50여 년간 활동을 해왔다. 범위도 디자인(설계)부터 조립, 제조 등 광범위하다. 가입 회원 수는 세계적으로 2500곳이 넘는다.
국제기구가 인정한 ‘공식 표준(de jure standard)’은 일본이 선도국이다. 국제기구(IEC/TC91) 의장도 맡고 있다. 일본이 PCB 표준 분야 큰 손으로 등장한 건 1980년대 이후다. 전자왕국으로 부상하던 시기다. PCB가 핵심부품으로 각광받으면서 덩달아 일본은 PCB 강국에 올랐고 표준 분야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일본보다 한참 늦게 표준 경쟁에 뛰어들었다. IEC에 처음 참여한 것이 2004년이다. 그동안 꾸준히 활동을 늘려 지금은 18명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PCB단체인 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KPCA)가 일본(JPCA)·중국(CPCA) 협회와 표준 협력 협의체를 결성했으며 지난달에는 중국에서 한중일 표준화 회의도 열었다.
7년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용어를 다루는 IEC PCB 소그룹(그룹5)에서 한국인 좌장이 지난해 처음 탄생하는 개가를 올렸다. 국제표준 첫 단계인 NP(New Proposal)도 지난해 한 건에 이어 올해도 한 건을 제안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표준을 지배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보다 활발한 국제활동이 필요하다. IEC에 참여하는 민간 위원을 늘리고 IPC에도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IEC에 참여하는 한 민간위원은 “PCB 분야 총회에 나가보면 절반 이상이 일본 위원이어서 위축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면서 “수가 많으면 그만큼 표준 제정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일본·미국·유럽만 참가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지소 인터내셔널 카운실(JIC)’에도 서둘러 참여해야 한다.
분위기는 좋다. 수년전만 해도 한국 참여를 전혀 고려하지 않던 JIC가 지금은 “한국도 들어오라”며 격려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시장이 커졌고 기술력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표준 경쟁에 밀려 도태한 기업이 하나둘이 아니다. 세계 표준 경쟁에서 우리 힘을 보여주자.
방은주 경인취재팀 부장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