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협회 출범은 산업 기틀을 다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세계로 뻗어가는 시발점이 됐다. 협회가 설립되기 바로 직전인 1990년 세계 반도체 업계 순위는 NEC, 도시바, 모토롤라, 히타치, 인텔 순이었다. 한국기업은 10위안에 하나도 포함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첫 시발점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최초 반도체 회사인 한국반도체가 LED 전자손목시계용 IC를 처음 양산한 것이 바로 그때다.
그 후 1983년 삼성반도체통신이 64K D램 개발을 발표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70년대가 태동기였다면 1980년대는 도약기, 1990년대는 반도체 산업 성장기라고도 불린다. 어느 정도 산업의 틀이 갖춰진 1991년 11월 11일, 반도체 관련 기업이 뜻을 모아 한국반도체산업협회를 설립했다.
그 후 20년동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이제 그 누구도 반도체가 대한민국 대표 먹을거리라는 표현에 이견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도 고속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언하기는 힘들다. 시장은 요동치고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기도 했다. 경쟁자들은 바짝 뒤를 쫓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뛰어넘어야 반도체 산업 위상을 지킬 수 있다.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전자신문은 지난 20년 동안 반도체 산업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 20년을 준비하기 위해 최근 르네상스호텔에서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한국 반도체 넥스트 20년’을 위한 좌담회에는 한국 반도체 산업을 최전방에서 이끄는 업계 대표들이 참석해 넥스트 20년에 대한 식견을 풀어놨다.
참석자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권오철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하이닉스 사장)
우남성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
이용한 원익 회장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
박영준 서울대학교 교수
양준철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사회 : 전자신문 유형준 부품산업부장
◇사회=지난 20년 산업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도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토론하도록 하겠다. 먼저 20년동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저력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되짚어 보자.
◇권오철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각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메모리 분야에 한정해 이야기하겠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대 반도체 대국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14%에 이른다. 그 중 메모리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미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단군 이래 최대 수출산업으로 성장했다. 디지털 산업 발전에 따라 성장 잠재력도 큰 산업이다. 3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성장 배경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나라 대기업이 ‘반도체 한국’의 꿈을 안고 과감한 투자를 했다. 그러한 투자 여력과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산업은 불가능했다.
둘째는 다른 나라와 달리 정부 주도 아래 민간기업과 학계가 초기에 핵심기술을 공동 개발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큰 힘이 됐다. 온 나라 기술력을 결집해 반도체 산업을 일군 것이다.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종합반도체회사(IDM) 체제를 비즈니스 모델로 했다는 것도 메모리 산업을 키운 요소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 메모리반도체 기술적 특성이 우리나라 문화적 특성과 부합된다고 본다. 메모리반도체는 집적도를 높이고 전력소비는 낮춰야 하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성을 보고 달려가는 부단한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또, 대규모 협업이 필요한 산업이다. 몇몇 천재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발부터 양산까지 수백명 엔지니어가 수백개 공정을 완벽하게 조합할 수 있는 대규모 협업 체제가 메모리를 만든다.
협업을 잘하는 우리나라 엔지니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다. 열정과 근성이 있는 한국 기술진의 문화적 특성과 잘 부합돼서 오늘날 메모리 산업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회도 좋았다. 우리가 메모리 시장이 진입한 것이 1980년대 초중반인데, 그때부터 PC 혁명이 일어났다. 1980년대 초부터 일어난 디지털 혁명으로 D램 수요가 매년 100% 성장했다. 2000년 동력이 시들해질 만 할 때에는 플래시 산업이 컸다. 위기도 많았다. 극심한 공급 과잉, IMF, 2008년 사상최대 불황 등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마다 더욱 분발해서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을 강화했다. 위기가 한국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사회=메모리 성장업체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시스템반도체 분야 성장 과정도 짚어 달라.
◇우남성 삼성전자 사장=사실 한국 반도체 역사는 시스템반도체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자원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메모리에 집중하자고 정책적으로 결정했다. 그에 따라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제약된 자원 때문에 시스템반도체에 인력과 자금이 많이 투입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사이에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에 비하면 시스템솔루션 알고리듬, 공정, 시스템까지 생각해야 하니 복잡하다. 다행히 5~6년 동안 한국도 시스템반도체를 잘 할 수 있다는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예로 들 수 있다. 또, 카메라 센서도 7년 전 시작할 때만 해도 앞이 잘 안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1위다. 집중하고 투자하면 시스템반도체도 잘 할 수 있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는 산업들이 있다. 그린, 자동차 등이 앞서간다. 시스템 분야와 연결시키면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굉장히 크다.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메모리에는 굉장히 집중된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시스템반도체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시장 자체가 크고 제품도 다양하다. 메모리는 명확한 로드맵이 있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없다. 누가 로드맵을 잘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시장 주도가 바뀐다. 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인내가 필요한 분야다.
동부도 지난 10년 동안 고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성과로 이어졌다. 그것이 시스템반도체 속성이다. 또 하나를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파트너다. 시스템반도체는 그야말로 시스템을 구현하는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메모리는 규격이 있어 누구나 쓸 수 있다. 한국 시스템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시스템과 시스템반도체 파트너 기반이 조성됐다.
◇사회=한정된 자원 때문에 메모리에 집중했다고는 하지만 시스템반도체가 기대만큼 성장을 못한 것도 사실이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사실상 2000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IMF 이후 창업 붐이 일어 산업 규모를 갖췄다. 사실 기회가 있었다. 당시 대만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었는데 그것을 놓쳤다. 시스템 발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해당 분야가 발전을 하면 그때그때 단계를 따라가면서 실력도 늘어야 하고 전문인력도 많아야 하고, 경영전략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제 디지털 시스템온칩(SoC) 분야는 복잡도가 늘어서 작은 기업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리스크도 커졌다. 그래서 벤처 캐피털도 투자를 안 하려고 한다. 난제를 어떻게 풀까. 중국 CEO 라운드 테이블에 초청된 자리에서 해답을 얻었다. 중국은 자체 이동통신 표준이 있다. 그것을 계기로 스프레드트럼과 같은 중국 베이스밴드 팹리스가 괄목상대하게 성장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다. DTV 칩은 80% 대만이 하고 있다. 원래 DTV 칩셋트를 제일 먼저 개발한 것은 우리나라다. 정부 과제를 통해서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삼성전자 시스템LSI 잘하고 있다. 이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국가적으로 구성해야 산업을 키울 수 있다. 팹리스는 자유롭고 다양하다는 장점이 있다. 포트폴리오를 짤 때는 메모리 산업 기억을 떠올리자. 과제를 여기저기 나눠주는 것보다 반드시 키워야 하는 과제를 잘 정해서 집중해 보자.
◇이용한 원익 회장=반도체 장비 사업한 지 20년이 넘었다. 반도체 장비 산업이 발전을 했지만 전공정 즉, 핵심 분야 국산화는 못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어렵다. 과거 반도체 관련 전시회에 가면 참여한 장비 회사가 수백개였다. 지금은 전공정 장비 회사가 10개 미만이다. 앞으로 이 추세대로 가면 5개 미만으로 줄어들 것 같다. 그만큼 대형화되고 있다.
기술도 고도화된다. 최근에 20나노, 그 다음은 10나노다. 기술 장벽을 높아질수록 개발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도체 잘하고 있는 것이 맞긴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소재와 장비 분야는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정부 지원은 어떤 역할을 했나.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정부의 R&D 반도체 산업 육성계획은 1984년에 발표됐다. 이것이 산업 시초가 됐던 것 같다. 그 후로 대형과제를 중심으로 지원을 해 왔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까지 메모리 관련 대형 R&D가 정부 핵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G7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것이 메모리 경쟁력을 키운 것은 다들 인정한다. 1998년에 시스템반도체 정책을 시작했다. 그것이 지난 13년간 진행된 시스템IC2010이다. 13년간 진행된 R&D는 선례가 없다. 정부의 반도체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반도체를 하다보니까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장비와 재료였다. 그래서 2000년대 관심이 장비와 재료에 쏠렸다. 성장 토양을 만드는 데 정부 정책이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관심을 둬야 할 부분에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고급인력 양성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사회=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둘 다 잘하면 좋지만 자원의 한계가 있다. 학계에서 보기에는 정부 지원과 인력 양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영준 서울대 교수=앞서 말한 대로 메모리 산업 성공요인은 최고 국가 인력이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떻게 사람을 키우고 배치하는 전략이 부재하다.
1970년대에는 KAIST가, 1980년대에는 서울대 공정 연구소가 반도체 인력 배출 산실이었다. 1990년대에는 시스템IC2010 사업과 반도체설계지원센터(IDEC)가 역할을 했다. 우수인력은 R&D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200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이다. 지난 10년 동안 그래도 지경부가 지원한 소규모 R&D 자금 외에는 학교에 유입되는 자금이 없다. 과거에는 과기부 자금이 있었지만 지금은 0이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따로 이야기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인력이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발굴하면 되는 것이다. 시스템반도체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나와야 한다.
◇사회=반도체 산업이 더 발전하는 데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용인=사람이 필요하다. 메모리와 비교해서 시스템반도체는 매출이 작아도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기반산업과 소재까지 발달해야 하니까 전자공학과 부품소재공학이 다 같이 필요한데, 인력이 없다.
◇이용한=국내기업 규모가 너무 작다. 글로벌업체들은 조 단위다. 그래서 몇개 안되는 업체라도 합쳐서 키워야 하지 않느냐는 공감대가 있다. 우리한테 기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장비 소재 시장은 매우 크다. 반도체 장비 원천기술이 태양광이나 OLED, LED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차세대 산업이 상당히 성장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글로벌기업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려고 애쓴다.
◇양준철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많은 분들이 사람이 없어 사업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조사했다. 반도체 전체 인력은 10만명 정도다. 그 중 63%가 메모리에 종사하고 나머지가 37%다. 대기업 인력이 80%, 중소기업 20%다. 앞으로 얼마나 필요한지 조사했더니 4000명 정도라고 나왔다. 그런데 그 중 2000명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나왔다. 석·박사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래서 한가지 건의하겠다. 현재 많은 R&D 자금이 기업으로 간다. 앞으로는 R&D 프로젝트를 대학과 꼭 같이 연계해서 해달라. 그러면 2차적으로 대학으로 흘러들어간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을 할 때 대학에서 같이 하니까 원하는 인재가 자연스럽게 양성된다. 양적 문제와 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사회=인력문제 해소를 위한 정부 계획은 무엇인가.
◇김재홍=제일 큰 이슈는 IT융합이다.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융합 전략을 준비해 왔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과정에서 SW 중요성이 부각돼 SW 생태계 전략을 만들었다. 이달 안에 대책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스템반도체2010 후속조치로 2015프로젝트도 시작한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려고 한다. 임베디드소프트웨어와 시스템반도체 융합 경쟁력에 포커스를 맞췄다. 모든 분야가 아니라 디지털기기, 자동차, 휴대폰에 중점을 두고 R&BD를 짜고 있다.
소재장비 분야 전략도 마련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공통 활용된 기술과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내년부터 신규로 시작하는 사업이 있다. 부품소재에서도 이제는 재료에 포커스를 두기로 했다. 장비나 재료에 대해 그전보다는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을 것이다.
◇사회=메모리 분야의 앞으로 기회와 위기 요소는 무엇인가.
◇권오철=제2의 디지털 혁명, 스마트시대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메모리뿐 아니라 반도체 전체 수요가 창출되는 시기다.
하지만 수요 특성이 고도화되고 어려워진다. 반도체 제조기술은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미세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쌓아가는 것이 메모리 게임 룰이었다. 이 게임이 벽에 부딪혔다. 2~3년 후 로드맵이 잘 안 보인다.
이제 메모리는 원가 낮추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임으로 접어들었다. 표준 제품 특성을 벗어나 솔루션화되고 있다.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한국기업이 잘 해 왔는데, 기술력을 더 배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력 제고하고 경쟁력 배양하는 원천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 키우는 일을 기업 내부에서 많이 해야 한다.
◇사회=시스템반도체에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이다. 향후 비전을 설명해 달라. 또, 앞으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도 이야기해보자.
◇우남성=한국 시스템반도체는 후발주자다. 그런데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최근과 같이 시장이 흔들리는 것이 유리하다. 윈텔결속력 약화 등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그간 로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해왔다. 실탄이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조심스러운 것은 중간층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된다. 기회는 오고 있고 할 수 있는 기반은 되어 있다.
◇양준철=양극화되는 현상에 대해 우리 업계도 준비해야 한다. 대형화되어야 한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반도체 시드머니를 투자했다. 450억원이다. 이것으로 1350억원 반도체 펀드 조성을 했다. 그 중 M&A 펀드가 있다. 250억원 정도로 마련해 놨다. 업계에서 자금을 활용해서 M&A할 때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허염=시스템반도체에 어려운 점이 많다. 대만에 가면 TSMC 회장이나 팹리스 사장이나 같은 레벨에서 만난다. 파운드리에게는 팹리스가 작든 크든 고객이다. 오늘은 작지만 내일은 클 수 있다.
팹리스에 필요한 몇 가지가 있다. 미래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 예측 가능해야 한다. 파운드리가 이런 점을 팹리스에 도와줘야 한다. 팹리스와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는 퓨어 파운드리가 필요하다.
팹리스 기업들에게 M&A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M&A가 쉬운 것은 아니다. 팹리스 시장 경제가 형성되면 M&A가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김재홍=그동안 반도체 소자에 집중해서 일등기업이 나왔다. 한 분야만 집중하면 일등 기업은 나올 수 있지만 일등 산업은 나올 수 없다. 산업이 일등하기 위해서는 팹리스 파운드리 재료장비 다 같이 가야 하는 거다. 정부 입장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전체 생태계로서 같이 갈 수 있는 방안 등을 두고 있고, 둘 수밖에 없다.
◇박용인=초창기 파운드리하면서 어려운 점이 소자와 공정 개발을 다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우수한 고객과 함께 하면 검증이 잘 되는데,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고객들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를 안해준다. 다른 고객이 더 편하게 쓸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은 파트너십이다. 하지만 첫 번째 공정은 먼저 안쓰려고 해서 문제다. 수백억을 들여 개발했는데, 검증을 꺼려하니 늦어진다.
◇박영준=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무어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로 인해 빠르게 시장이 변한다.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하면 후발주자가 따라온다. 무어의 법칙으로 인한 위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실리콘이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차별화된 기술이 나오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원천과학기술이 한국에서 꼭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1%라도 핵심이 나와야 한다. 그럴 수 있는 대학과 역량이 충분히 있다. 최근 인텔 3D 기술도 서울대가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않았나.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싱크탱크가 절실하다.
◇양준철=기업 쪽에서도 최근에 스스로 인력을 키우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정부 자금은 한계가 있고, 원하는 인력은 쓸 수가 없다. 스스로 대학에 자금을 대고, 정부에서 매칭 들어오고 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정원 외 프로그램 만들어서, 기업과 정부가 같이 투자를 해서 고급인력 키우는 방법도 고민해 보자.
◇사회=앞으로 어떤 분야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가.
◇우남성=시스템반도체는 고성능 모바일 AP, 센서, 디스플레이, 커넥티비티 성능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사용자-애플리케이션-OS-단말-칩에 이르는 에코 시스템 내에서 칩 역할은 확대될 것이다.
◇박용인=최근 IT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등 첨단 스마트제품이다. 이는 제품이 새로운 IT트렌드를 만든 사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래시장을 예측하는 마케팅 능력과,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혁신적인 R&D 능력이 필요하다.
반도체회사들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IT제품에 맞는 혁신적인 시스템반도체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반도체회사들이 생산보다는 마케팅과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파운드리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모든 기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하여 역량을 집중해 경쟁사보다 확고한 경쟁력을 다지며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반도체 분야에 집중해 특화파운드리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용한=선두 소자업체와 협업 없이는 차세대 공정에 적합한 기술 확보 및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반도체 생산거점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아시아로 이전되고 있다. 한국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패스트무버(Fast mover)로 변하고 있다. 소자업체와 장비 부품 신뢰성을 활용한다면 지역 이점을 활용해 대만이나 중국시장 공략도 가능하다. 다행히 한국은 30년 반도체 역사와 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인건비가 비싸다고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원가 경쟁력이 있다. 장비나 부품 분야는 소자업체와 정부 지원에 따라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 국산화율이 현재 16%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학연 공동 투자 등을 통한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허염=아날로그 분야는 역사가 50~60년된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SoC는 규모가 큰 기업이 한다. 포인트가 과거 10년과 달라졌다. 결국은 솔루션이다. 솔루션으로 간다는 것은 한 회사가 다 할 수 없다. 더 복잡해지고 요구사항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창업하면서 파워 분야를 한 이유는 대기업과 비교해 소수로도 해볼 만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제 작은 기업이 SoC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자.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 우리가 들어갈 때 1~2등 못할 거면 안하는 게 낫다. 1~2등 하려면 원천기술 확보해야 한다. 다행히 시스템기업이 많으니 로드맵을 공유할 수 있다.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우남성=시스템반도체 성공 케이스를 돌아보면 TV나 휴대폰과 관계된 것들이다. 두 분야의 공통점은 튼튼한 세트산업이 기반이 됐다는 점이다. 그런 회사가 없었으면 시간이 더 많이 걸렸을 것이다. 지경부에서 자동차반도체를 육성 분야로 본다고 했는데, 잘 본 것 같다. 그런데 자동차는 반도체 분야와 쓰는 용어부터가 다르다. 다리가 있어야 한다. 정부나 학계에서 다리를 놔 달라. 양쪽 강점을 강화할 수 있다면 10~20년 먹을거리가 생길 것이다.
◇권오철=구체적으로 할 일은 참 많다. 기본이 중요하다. 상생을 하더라도 시장 원리, 경쟁원칙을 지켜야 한다. 한국 업체하고만 잘해라는 식은 안된다. 우리 스스로 국수주의에 빠져들면 안된다. 무한경쟁 시대 아닌가. 국경이 없다.
산업 초기 마인드로 가면 안된다. 여기서 개발해서 고용을 확대하고 하는 마인드는 뛰어넘어야 한다. 세계에서 1등, 2등을 다투는 때가 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가야 한다. 열린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자율적 판단과 기초 위에서 정부와 기업, 학계가 시너지를 내야 한다.
◇이용한=상생은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가격이나 기술경쟁력이 없는 제품을 사달라는 게 아니다. 거기에서 이윤을 분배하는 것이 맞다. 국산화되면 장비 값이 50% 떨어지는데, 결과적으로는 소자업체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익의 경우 반도체 기업들 비용을 1년에 1000억원 이상 절감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공정의 장비 업체는 독점화되고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선두 업체들이 또 합치려고 한다. 이러다 보면 서너 개만 남는다. 회장 말 대로 자연경쟁 환경은 이해하지만 기술 독점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국내기업에서 어느 정도 자체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삼성과 하이닉스가 잘 해줬다. 우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소자업체의 지원과 관심 속에 컸다. 국내 장비소재 기업의 발전은 소자 업체의 이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양준철=장비 개발되면, 팹에서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성능 평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연간 15억원 정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장비업체가 도움 받고 있지만 아직 규모가 작다. 이 예산을 보고 정부가 대기업에 지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국산 장비 촉진을 위해서는 성능평가 받아야 하고 그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내년에는 더 증액이 됐으면 한다. 또 대학원 학생이 설계할 때 실제 팹에서 흘려볼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인력양성에도 도움이 된다.
◇사회=반도체 넥스트 20년을 위해 많은 의견이 나왔다. 업계 대표들께서는 위기와 기회 요소가 공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박 교수가 지난 10년이 학계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지적하셨지만 일본반도체협회장은 최근 한 모임에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한탄을 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는 많은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앞으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헤쳐 나가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력양성이 강조됐던 것 같다. 학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기업에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정리=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