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실패 후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봤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행여 막다른 골목에 몰려 빠져나오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지금은 창업의 꿈을 접었습니다.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환경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거든요.”
미래 최고경영자(CEO)를 꿈꿨던 한 청년은 담담하게 자신의 얘기를 털어놨다.
입학과 동시에 창업동아리에 가입하고 창업경진대회에도 여러 번 참가할 정도로 열정이 컸지만 학년이 오르고 본격적인 진로 고민을 시작하면서 창업을 포기했다.
성공사례보다 많은 실패사례, 탈출구가 없는 실패의 덫이 청년의 시선을 창업이란 꿈에서 현실로 돌려놨다.
그는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더 많은 청년들이 창업이란 꿈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벤처붐과 함께 창업은 강력한 트렌드가 됐다. 청년창업 지원을 위해 정치권은 내년 예산을 크게 늘렸고 창업역량을 키우기 위한 대학과 지자체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비창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현실이다. 창업 실패가 빚더미와 신용불량자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젊은 날 한 번의 실수가 평생 멍에가 되는 상황에서 꿈보다 현실을 택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실패한 창업자를 지원하는 제도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아직은 규모가 작고 이용률도 높지 않지만 향후 창업자들의 훌륭한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벤처기업협회와 기술보증기금은 ‘벤처기업 경영재기지원제도’를 통해 실패한 창업자들의 재기를 돕는다. 지난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경영재기지원제도는 벤처기업 확인 후 벤처확인기업이 취소된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다.
세부 기준으로는 △1997년 이후 벤처확인을 받은 후 1년 이상 기업을 경영한 벤처기업인 △폐업 또는 청산 절차를 밟은 기업인 △부채 규모와 상관없이 신용에 이상이 없는 기업인 △연체 등 정보등록자(신용불량자)는 개인채무 및 보증채무 포함한 총채무가 15억원 이하인 기업인 △현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기업인 등이다. 사기와 횡령 등 부도덕한 행위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거나 소송의 당사자로 형이 확정된 전력이 있는 기업인은 제외된다. 도덕성평가 부문의 불합격자는 재신청 및 재심의가 불가능하다.
경영재기지원제도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9명이 지원, 기술성과 도덕성 평가를 통해 총 3건이 지원됐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충분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까진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실패한 창업자들의 재기를 도울 수 있는 만큼 앞으로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정직한 실패에 대한 재기지원을 돕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재창업자금 지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원대상은 사업실패로 은행연합회의 ‘신용정보관리규약’에 따라 연체 등의 정보가 등재된 자 또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다.
재창업자금심사는 기술성과 사업성, 경영능력을 평가한다. 얼마나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와 해당 아이템의 시장성, 대표의 전문성, 추진력, 신뢰성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 재창업자금 경영능력 평가에서는 신용상태가 취약한 신청자의 여건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것이 중진공의 방침이다.
중진공이 직접 대출하는 방식으로 업체당 연간 30억원 이내에서 공공자금관리기금 대출금리보다 0.6%p 저렴한 대출 금리를 제공한다. 현재 공공자금관리기금 대출 금리는 3.8%로 재창업자금 지원을 받을 경우 대출금리가 3.2%로 낮아진다. 지난해와 올해 246개 업체가 자금지원을 신청해 지난달 말까지 총 84개 업체에 94억1700만원의 지원금이 집행됐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해 11월, 2001년부터 시행해온 회생지원보증제도에 신규보증제도를 더해 ‘재도전 기업주 재기지원보증 제도’ 운용을 시작했다.
구상채권기업과 구상채권기업의 대표자가 대표인 기업을 대상으로 회생지원보증과 신규보증을 지원한다. 평가기준은 △신청기업의 부실발생 경위 △재도전 기업의 기술성 및 사업성 △재도전 기업의 도덕성 △대표자 경영능력 및 자금조달·운용계획 등으로 재기심의위원희의 의결을 통해 재도전 기업주의 가능성을 검증한다.
[표]기관별 재기지원제도
(자료 : 각 기관)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