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주최하는 ‘IT CEO포럼’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주제로 5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렸다. 12회째를 맞는 포럼에서는 차상균 서울대 교수의 주제 강연을 시작으로 이석채 KT 회장, 김진형 카이스트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토의를 벌였다.
좌담회에 앞서 차 교수는 ‘전환기의 IT산업, 글로벌 도전과 우리의 미래’를 주제로 글로벌 IT 패러다임 격변 속에서 국내 IT기업의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차 교수는 “국내 시장 위주의 SW 육성 정책과 단순 인력 양산 프로그램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통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정부의 질적인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SW 산업의 추세를 이해하면서 선제적 전략 전술을 책임 있게 실행할 수 있는 리더십 역량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좌담회에서 김진형 교수는 “우리나라는 SW 불법복제 등 지식산업의 인식 부족으로 SW 소유권 개념이 없고 부적절한 제도와 관행으로 SW 뒷받침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석채 회장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컴퓨팅이 결합해 모바일 컴퓨팅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며 “SW산업은 엄청난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실리콘밸리에 KT 클라우딩 조직을 신설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좌담회 주요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좌담회>
◇참석자
김진형 카이스트 교수
이석채 KT 회장
차상균 서울대 교수
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장(사회)
△사회(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장)=SW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진형 카이스트 교수=한국이 조선과 자동차로 먹고사는 것은 포항제철이라는 회사가 있기에 가능했다. 다가오는 지식 산업 사회에서는 SW산업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KT의 SW 살리기 3행(3行)은 회사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반겨야 할 일이다.
한국의 SW산업은 투자가 없고 시장이 없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SW 활용계획이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SW 인프라 갖추는 데 많은 투자를 했는데 활용을 못하고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시간당 노동생산성 꼴찌다. 이를 만회하려면 많이 일하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IT에 투자해야 한다.
둘째는 지식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정부에 원죄가 있다. 정부 용역 사업은 공공기관에 다 무료로 뿌린다. 아주 잘못된 점이다. SW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SW는 사용권을 사는 것이다. 배포권과 2차 저작권에 대한 이해도 없다. 저작권법은 SW에 불리한 조항이 너무 많다. 그림과 음악을 보호하자는 법에 SW가 들어가 있는 꼴이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지식재산권을 양도할 때 2차 저작물은 당연히 포함된다는 조항이 있다. 앞뒤가 안 맞는다. 세 번째는 부적절한 관행이다.
△사회= SW 활성화 정책 발표하며 고민하지 않았나.
△이석채 KT 회장= IT산업 관점이 현장에 계신 분들과 좀 다르다. 어떻게 하면 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을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젊은 층에게 어떤 멋진 일자리를 줄 것인가. 노년층에 어떻게 안정된 삶을 보장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다음 정권은 IT를 경제 정책에 중심에 놓고 진행해야 한다. 변방에 두고 관장해서는 안 된다.
10년 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에 IT가 다음 먹거리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최근 강단에 서다 보니 젊은 층에서 그 꿈이 사라졌다. 우리 산업 경제 정책의 핵심은 시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자동차·조선 등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분야에서 세계 톱 클래스로 올라섰는데 IT는 이를 못하고 있다. 시장에 맞춰 패러다임을 다 바꿔야 한다. 실패해도 재도전하고 한 번 성공한 것은 팔면 끝이 아니라 다시 자산으로 활용해 점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을 가진 기업은 많으니 이를 기업화·상업화 하는데 고비가 많다. KT가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역사는 쟁취하는 것이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한국 SW산업이 성장하려면 베푸는 걸 기대하면 안 된다. KT도 못한다면 질책도 하고 채찍을 가해라.
△ 사회= 국내 업체가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차상균 서울대 교수= 시각이 바깥에 있다 보니 국내 현실과는 안 맞을 수 있다. KT 정책은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많은 분들이 좀 더 나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벤처를 시작하기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보다 불공정한데도 많다. 작은 나라에서 이 정도로 기업이 성장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장이 작아서다. 이를 넘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관심이 다르다. 그런 것을 잘하는 데가 이스라엘이다.
한국 SAP R&D센터코리아처럼 로컬 R&D는 지금은 보편화한 개념이다. 미국에서 통하면 어디서든 통하니까 현지에 센터를 두어도 좋다. 이런 모델을 역으로 시도해도 괜찮다. 기업 본사를 미국 애플 본사 앞에다 갖다 놓는 식이다. 용역과 예산 지원 등에서 불공정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데도 비즈니스가 되는 것을 보면 한국시장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용역 사업도 좋지만 지금 형태로는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힘들다.
△ 이석채 회장 = 발표할 단계는 아니지만 클라우딩 컴퓨터 관련한 조직을 실리콘밸리에 설립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일부에서 KT가 외산 게임 SW를 수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SW 개념은 상당히 폭이 넓다. 물론 게임도 그 중 하나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KT가 토종 SW를 세계에 갖다 팔 수 있게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중·일 오픈마켓 교류 프로젝트인 ‘오아시스’를 통한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게임은 SW의 맨 앞에 있다.
△사회 = 초등학교에서 IT교육을 하는데 어린이 파워포인트, 어린이 엑셀만 가르친다. IT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언어를 가르치는 과목은 없다.
△ 이석채= 한국서 IT를 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걱정이 많다. 그래서 기본이 되는 언어를 안 가르치고 사용법만 가르치는 그런 풍토가 있는 것 같다.(웃음)
△ 김진형= 7차 교육과정이 되면서 관련 과목이 완전 빠졌다. 엔지니어라도 교육을 잘 못 받는 게 현실이다. 정보보호촉진법이 국회서 심의 중이다. 정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해야겠다. 정부에서 SW를 다루는 것이 홀대 수준이다. 지금 전자정부, 스마트워크, 의료 등 정부가 IT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일자리 관념에서 IT를 공공사업화해야 한다. 4대 강 사업에 22조원을 넣었다는데 공공지식화 사업에는 30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정부가 생태계를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정책은 헛발질이 아니라 자책골 수준이다.
<주제 강연> 차상균 서울대 교수 ‘전환기의 IT산업, 글로벌 도전과 우리의 미래’
“과학은 불연속적인 패러다임에 의해 발전합니다. 패러다임 변화는 다수보다는 용감한 소수에 의해 일어납니다.” 차상균 서울대 교수는 기조 강연에서 토머스 쿤 전 매사추세츠공과 대학(MIT) 교수 발언을 인용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분발을 촉구했다. 도전과 혁신 없이는 기회를 잡지 못한다는 충고다.
차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실리콘밸리에서 인 메모리 데이터베이스(IMDB) 벤처 회사인 ‘트랜잭트 인 메모리(TIM)’를 세웠다. 2005년 글로벌 업체 SAP에 회사를 합병 시킨 후 현재까지 한국에서 SAP R&D 센터코리아를 이끌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창업 경험을 토대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비전과 구체적인 전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란 설명이다.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덧붙였다. 차 교수는 “실리콘밸리에 처음 창업을 했을 때 거의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도전했다”며 “하지만 당시 차세대 메모리 기술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개발하니 그 분야의 유명한 사람을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차 교수는 당시 쌓았던 인맥이 결국 2005년 SAP과의 합병을 이끌었고 지금까지 연구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차 교수는 도쿄대에서 SAP 한국 R&D센터를 방문해 ‘일본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한 일화를 예로 들며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업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한국이니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하더라”며 한국인의 기질이 벤처와 잘 맞는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이 날 ‘오픈소스’와 ‘클라우드’를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새겨야 할 키워드로 제시했다. 기술 변곡점이 도래하는 만큼 이를 예측하고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라는 조언이다. 차 교수는 “역사는 반복돼 변화의 지점을 파악하는 안목과 곧바로 행동할 수 있는 실행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서 2인자 위치를 목표로 비즈니스를 전개하면 결국 따라가기에 급급한 추종자밖에 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없이는 결국 버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정리=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