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PIGS

 세계 경제가 또 다시 폭풍우 속에 갇혔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앞날에 각국이 긴장하고 있지만, 언제 걷힐 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암담함을 더한다.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세계경제를 호령했던 ‘월가(Wall Street)’는 고도비만·빈혈·뇌경색 합병증으로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이후 미국 투기자본 생성 뿌리가 됐던 유럽 전역으로 재정위기가 퍼지면서 나온 단어가 바로 ‘PIGS’다. 포르투갈, 이탈리아(당시는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 머리글자를 딴 조어다.

 그중 그리스는 맨 먼저 국가부도(모라토리엄)가 코앞에 닥쳤고, 나머지도 하나 같이 연쇄도산을 위협받고 있다. 그야말로 전 지구적 부도 위기다.

 문자를 사용할 줄 알게된 인류는 현실을 기록하면서 수많은 표현을 후대에 남겼다. 그것이 고스란히 역사가 됐다.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PIGS’ 역시 기록으로 남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억제할 수 없는 탐욕(식욕)과 오만한 행동, 철저하지 못한 자기관리는 유럽 각국을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치료를 위해 나섰다가 건장한 독일 마저 기진맥진할 처지다.

 이 ‘PIGS’가 3주째 계속되고 있는 월가 시위에 다시 등장했다. 물론 의미는 좀 다르다.

 젊은 시위대의 피켓에는 ‘No BULLs, No BEARs, Only PIGs!’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말인 즉슨, (월가에는) 매수 하려는 사람도, 매도 하려는 사람도 없고 오로지 돈에 눈먼 사람들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아이비리그(미국 동부 명문대학) 출신까지 섞여 있다는 이들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공적자금의 사회적 재분배가 아니다. 공적자금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이는 합당한 활용을 요구하고 있다.

 공적자금이 필요한 곳에 돌아가지 않고 배부른 돼지의 칼로리를 더 높여주는 일이 없는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되돌아 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이진호 금융팀장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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