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 53명이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서로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한 목소리로 성명서를 내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왜 머리를 맞대게 됐을까요. 국회의원들이 방송광고대행사(미디어렙)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미디어렙 법안을 논의하러 나올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미디어렙법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시끌시끌할까요. 한번 알아봅시다.
Q:미디어렙이 뭔가요?
A:미디어렙은 방송사들 대신 광고 영업을 하는 회사입니다. 지금까지는 KBS·MBC·SBS·EBS와 대구방송·광주방송 같은 지역민영방송사, CBS·불교방송 등 종교방송에 광고를 내고 싶으면 한 회사에만 연락해야 했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그것이죠. 만약 여러분이 음료수 회사 사장이고 MBC ‘무한도전’이 시작하기 직전에 음료수 광고를 내보내고 싶다면 코바코에 연락하면 됐습니다. 그러면 코바코에서는 광고를 받아서 무한도전을 방영하기 전에 음료수 광고가 나가도록 하고, 광고비를 방송국에 나눠줬습니다. 코바코 같은 회사를 미디어렙이라고 합니다. 전 국민이 보는 방송은 영향력이 아주 큽니다. 방송사가 직접 광고 영업을 하지 않고 코바코가 대신 해주는 이유는 방송사가 광고를 많이 하는 기업을 감싸거나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악의적인 뉴스를 내보내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Q:미디어렙이 국회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뭔가요?
A:미디어렙이 문제가 된 건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헌법재판소가 방송사들의 광고를 코바코가 다 받아서 나눠 주는 구조가 우리나라 헌법과 맞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말하자면 방송사들이 이제는 코바코 한 곳을 통해서 광고 영업을 하지 말고 미디어렙을 여러 개 만들어서 경쟁을 하라는 뜻입니다. 통신사, 인터넷 포털, 케이블TV 등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다른 회사들은 모두 각자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광고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만 경쟁을 하지 않고 코바코가 독점하고 있는 건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년 안에 국회의원들이 법을 고쳐서 미디어렙을 두 개 이상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헌법과 맞지 않는 법을 고쳐서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각 정당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지 않아서 자꾸 싸움이 일어나고 법안 처리도 미뤄지고 있습니다.
Q: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어떻게 다른가요?
A:여당(한나라당)과 야당(민주당)의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코바코와 경쟁할 수 있는 미디어렙을 몇 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방송사가 꼭 미디어렙에 위탁해서 광고를 해야 하는지 범위를 정할 때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에서는 KBS·EBS·MBC 같은 공영방송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코바코를 통해 영업을 하고, SBS와 다른 방송사는 따로 미디어렙을 하나 만들어서 광고 영업을 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공영 미디어렙 하나, 민영 미디어렙 하나가 생겨서 두 회사가 경쟁하게 됩니다. 또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신문이 새로 만드는 종합편성채널 방송사도 두 개의 미디어렙 중 하나에 광고 위탁을 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종합편성채널 방송사가 위탁을 하지 않고 각자 광고 영업을 하면 신문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해서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강요할 수도 있다고 걱정합니다.
반면 한나라당에서는 KBS·EBS 등 공영방송은 코바코에서 영업을 하지만 MBC·SBS는 각자 미디어렙을 만들어서 여러 회사가 경쟁을 하게 하자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종합편성채널은 케이블TV처럼 미디어렙에 광고를 위탁하지 않고 알아서 영업을 시키자고 합니다. 미디어렙 수가 많아지고, 종합편성채널도 각각 영업을 하면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기 때문에 광고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Q:미디어렙 법이 빨리 마련돼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A:미디어렙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빨리 공표돼야 하는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 2년이 지나서 방송광고 영업에 관한 법률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법이 없으니까 방송사들은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또 지역 방송사, 종교 방송사처럼 작은 회사들이 광고를 KBS·MBC·SBS 같은 큰 방송사나 종합편성채널에 빼앗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코바코가 광고를 하는 기업들에게 중소 방송사에도 광고를 하도록 독려해왔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면 기업들은 큰 방송사에만 광고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지역방송사와 종교 방송사가 광고를 하지 못해서 도산하게 되면 방송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지역 소식을 전하거나 종교 소식을 전해 줄 매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Q:언제쯤 미디어렙 법이 생길까요?
A:국회의원들은 미디어렙 법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의원들이 이 합의를 지킨다면 9월에 미디어렙 법이 생기고 방송사들은 새로 생긴 미디어렙에 광고 영업을 위탁하거나 각자 영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