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날개를 모사한 로봇, 지능형 무인 자동차, 옷처럼 입는 게임기, 가상의류 3차원(3D) 패션 기술. 이들은 모두 여러 학문 영역을 한 데 모은 아이디어다. 이를테면 곤충이 날 수 있는 원리를 자연과학에서 얻은 뒤, 이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재료를 화학·소재 영역 연구를 통해 찾아내는 방식이다. 정보기술(IT)과 기계공학이 만나 지능형 무인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있고, IT에 예술·문화를 접목하면 가상의류 3D 패션 기술이 탄생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서로 교차하거나 접목하는 융복합은 이전부터 많은 논의가 이뤄져 왔다. 1980년대 초 국내 대학은 학부제를 도입해 인접 학문 간 융합을 꾀하기도 했고, 1990년대 말에도 이 같은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유사성을 지닌 인접 학문을 한데 묶은 학부제 같은 시도는 기계적 결합에 머물렀을 뿐, 화학적 결합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에는 오히려 영역이 완전히 다른 분야 사이의 융합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공학과 의학 등의 융합이 그것이다. 특히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최근 서울대 연구진은 미래 먹을거리 산업 창출을 위해 10년간 정부가 추진해야 할 어젠더를 제시하기도 했다. ‘융복합 학문시대 국가 미래 연구·개발(R&D) 어젠더 발굴을 위한 기획 연구’ 보고서를 통해서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중장기 핵심 R&D 과제를 기초·자연, 통신·전자, 의료·바이오, 기계·제조, 우주·항공·해양 등 11개 대분류와 37개 중분류로 나눴다. 이들 분야를 서로 교차한 뒤 융복합 가능성을 분석해 55개의 미래 어젠더를 한 것이다. 곤충 날개 모사 로봇이나 지능형 무인 자동차 등은 모두 이들 연구진이 제시한 사례다. 정책 추진이 뒷받침되면 모두 10년 이내에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강태진 서울공대 학장은 “이공계열 학장 뿐 아니라 인문대와 음·미대 학장들도 논의에 함께 참여했는데 저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며 “상이한 분야가 서로 보완을 이룬다는 점에서 융복합 학문의 중요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3개 대학과 미래 IT기술 분야 석박사 인력 양성을 위한 ‘IT융합학과’ 개설 협약을 맺었다. IT융합학과는 지난 2007년부터 운영해온 휴대폰학과를 확대한 것이다. 이 학과에서는 바이오, 에너지 등을 배울 수 있도록 의공학, 스마트그리드, 장비 등 각 분야 교수 10여명도 신규로 참여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소프트웨어(SW) 인력 양성을 위해, 관련 학업 환경도 조성한다.
지식경제부는 고등학생 대상 융합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영마이스터 프로그램’은 마이스터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국내외 기술수준 현황과 경향을 알려준다.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은 IT산업과 기계산업에서 기술 융복합이 이뤄지는 현장을 방문하고, 관련 개념 등을 학습했다.
<표>융복합 R&D 기술 대표 사례
(자료 : 서울대)
박창규기자 k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