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을`의 눈칫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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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화기 넘어 취재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기사를 내려 줄 수 없겠습니까. 틀린 부분은 없지만 고객사에서 그걸(기사) 보고 압박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안 되면 몇몇 단어나 숫자라도 좀 부탁합니다.”

 당황스러웠다. 기사 삭제 요청이 결례라 생각해서가 아니다. 언론의 시스템을 모르면 말할 수 있는 부분이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황한 건 다른 이유에서다. 공시에도 올라온, 다시 말해 대외적으로 공개된 공급 계약에 관한 내용이었는데도 민감하게 반응해서다.

 취재원의 걱정은 이랬다. 구체적인 수량과 금액이 기사로 노출되면 공급 가격이 파악될 것이고 기사를 본 다른 거래처에서 단가 인하를 요구할 것이란 우려였다. 그래서 최대한 자신의 회사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요지였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회사의 소식 하나 마음 편히 대외적으로 알릴 수 없고 눈치를 봐야 하는 산업 내 보이지 않는 강력한 갑을 관계가 느껴져서다. 주주나 시장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갑’인 현실.

 작은 회사일수록 압박 강도는 더하는 것 같다. 보도자료 글귀 하나, 단어 하나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괜찮다고 했던 이야기도 때론 한 기업의 대표를 뛰어 오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경위서와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서류는 이 때 ‘필참’이다.

 한 부품 업체 경영자는 자신의 회사가 상장되는 게 싫다고 했다. 주주들의 경영 간섭도 그렇지만 불편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그 중 하나는 기업 공개에 따른 수익 구조가 상세히 공개되면서 찾아오는 단가 인하 압력이라고 했다.

 최근 동반성장이 강조되면서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수직적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일고 있다. 구체적인 협약서까지 체결하며 서로의 도움과 발전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협약들이 또 하나의 압박 수단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지 걱정도 있다. 쓸 데 없는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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