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미디어리서치 매트 오그라디 부사장은 “아이패드로 방송을 보는 사람들의 시청률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비록 “연구개발(R&D)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단서를 두긴 했지만 이 발표는 방송 시청 개념이 ‘TV 화면을 보는 것’에서 ‘모바일기기를 통한 것’까지 확대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 상황도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TV·모바일TV(DMB)·스마트폰·스마트패드로 단말기가 다양해졌듯이 단말기에 방송을 송출하는 플랫폼도 늘어났다. 집에 손님을 초대했는데 구워 놓은 파이를 2명이 먹을 때와 8명이 먹을 때 각자 챙길 수 있는 조각은 크기가 다르다.
◇10년새 두 배 이상 많아진 방송 플랫폼=198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지상파방송사만 존재했다. 국민은 KBS·MBC·EBS가 직접 쏘는 전파를 안테나를 거쳐 봤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수신이 안 되는 지역에서 전파를 받아서 케이블로 연결해주는 유선방송사업자(SO)가 생겼다. 1995년 케이블TV방송 24개와 채널사용사업자(PP) 24개가 허가를 받고 방송을 시작했다. 2001년 PP등록제가 시행되자 PP·SO 숫자도 늘어났다. 2002년 위성방송이 등장하면서 방송광고 시장도 2001년 2조1945억689만원, 2002년 2조7209억4240만원으로 규모가 커졌다.
시장 규모가 커지는 상태에서도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시장 지배자의 역공이 만만치 않다.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가 SO로 전환할 때도 소송전이 벌어졌다. 2002년 위성방송이 등장하고 2007년에는 위성공시청안테나(SMATV) 사용을 놓고 SO협의회에서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2005년 등장한 모바일TV는 지상파DMB·위성DMB로 나뉘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2008년 국내 통신 3사가 IPTV 서비스를 개시했다. 케이블TV 업계에서는 IPTV 서비스가 등장하자 시장도 조금 확대됐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약 300만가입자가 새롭게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들어 케이블TV사업자의 가입자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했다. 2년 새 스마트폰·스마트패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에는 구글을 필두로 스마트TV가 나타났다. CJ헬로비전 ‘티빙’ 서비스, 통신 3사 N스크린 서비스 등 모바일용 플랫폼이 또다시 등장했다. 방송계에 일대 혼전 상황이 벌어졌다.
◇새로운 거대 콘텐츠사업자 등장=플랫폼 못지 않게 콘텐츠 시장에서도 다양한 사업자가 나타났다. 1996년 SBS가 개국했다. 2001년 PP등록제 시행 이후 PP 수는 200여개까지 치솟았다. 2008년 수도권 지상파채널 OBS가 신설됐다. CJ E&M이 거대 미디어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미디어법 통과 이후 종합편성채널 4개가 방송계 입성을 앞두고 있다.
경쟁자는 국외에서도 나타났다. 올해에만 디즈니와 SK텔레콤 합작사 텔레비전미디어코리아(TMK), 소니엔터테인먼트와 CU미디어 합작사가 만든 AXN이 국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인터넷망을 통해 유튜브, 훌루 등 해외 콘텐츠 서비스도 국내에서 활용할 수 있게 돼 콘텐츠 분야에서도 경쟁은 격화하고 있다.
◇방송광고 시장은 정체=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나타나면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마련이다. 방송 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었던 데는 플랫폼·콘텐츠사업자 숫자 증가가 한몫 했다.
국내 방송 시장은 손님이 더 올 때마다 더 큰 파이를 구워냈다. 하지만 오븐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 2007년 이후 지상파 광고 시장은 2조원대에서 1조원대로 추락했다. 점유율도 32.3%에서 26.4%까지 떨어졌다. 거대 PP가 등장하면서 케이블 쪽에 광고를 빼앗긴데다 온라인·모바일과도 경쟁해야 하는 실정이다.
종편이 등장하면 또 한번 위상 추락이 불가피하다. 똑같은 파이라면 각자가 더 큰 조각을 갖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다. 지상파·케이블TV 업계간 싸움이 불가피한 이유다.
광고 시장 추이
(자료: 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산업통계집)
오은지기자 onz@etnews.com